ADVERTISEMENT

외국선 신사업 일단 시행 후 빠른 중재…호주, 우버 탈 때마다 1달러씩 펀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뉴욕 옐로캡(노란 택시) 면허권의 가격은 2014년 100만 달러(약 12억원)까지 치솟았다. ‘메달리온’이라 불리는 이 면허권은 이때를 정점으로 지난해 10월 기준 평균 18만6000달러(2억2000만원)로 떨어졌다.

핀란드 택시 요금 자율화로 지원 #뉴욕 택시 면허권 12억 →2억 되자 #승차공유 신규 면허 한시적 중단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1년 반 동안 3명의 메달리온 택시기사를 포함, 총 8명의 택시기사가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또 2016년 이후 950명의 택시기사가 파산 신청을 했다.

다만 NYT는 이에 대해 “(승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나 리프트 때문이 아니라 규제 당국의 무모한 대출이 본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관련기사

우버로 대표되는 승차 공유 서비스가 택시 등 전통 산업과 갈등하는 건 한국뿐이 아니다. 호주에서도 최근 택시기사와 렌터카 사업자 6000명이 우버가 불법 영업으로 손해를 끼쳤다며 집단 소송을 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는 호주 최대 규모의 집단 소송 중 하나다. 한때 최대 90개국에 진출했던 우버의 최근 해외 서비스 국가는 60여 개국으로 줄었다. 그만큼 모빌리티(이동성) 신사업에 대한 각국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일단 서비스를 출범시킨 뒤 각종 문제가 생기면 당근과 채찍을 제시하는 데 비해 한국은 승차 공유 서비스가 태동도 하기 전에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위원은 “해외 정부와 도시는 발 빠른 중재와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이런 갈등에 대처하는 것이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경우 한국과 다른 점은 우버나 리프트 등 승차 공유 서비스를 제3의 범주인 교통네트워크 회사(TNC)로 규정한 뒤 주마다 각자 규제를 만들어 승차 공유 업체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은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승차 공유 업체에 대해 추가 면허 취득을 1년간 금지했다. 이에 비해 초창기 깐깐한 규제를 적용했던 일리노이주는 2016년 우버와 리프트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일리노이주는 주당 20시간 이하와 20시간 이상 운행하는 차량에 운행세 등 세금에서 차등을 뒀다가 이를 구분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그랩의 고향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초기에 승차 공유 사업을 합법화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그러다가 그랩이 성장한 이후부터 차량과 기사에 대한 요건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랩은 운전기사 보험료나 차량 수리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고영경 말레이시아 선웨이 경영대 선임연구위원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합법화하면서 향후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선언했고, 현재 이를 실행해 나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택시기사에게 당근책을 제시하는 국가도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우버 등 승차 공유 차량을 호출할 때마다 이용자에게 1달러의 부담금을 5년간 지불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2억5000만 달러(약 3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이를 택시 업계를 위해 쓸 예정이다.

핀란드는 지난해 7월부터 승차 공유를 합법화하면서 허가제였던 택시 면허 건수의 총량 규제를 없앴다. 택시 요금도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해줬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자 출발지에서부터 목적지까지의 모든 교통수단을 끊임없이 연결해 주는 ‘휨’이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일본은 택시 서비스의 수준이 높다 보니 모빌리티 서비스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낮은 편이었다. 택시 호출 앱 비중도 전체 택시 시장의 5%에 불과하다. 일반 승용차를 몰면서 운송비를 받는 것은 한국처럼 법으로 금지돼 있다. 그래서 지난해 7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런 바보 같은 나라의 일본”이라고 정부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런 일본 정부도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모빌리티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중국 디디추싱이 일본 택시업체 다이이치와 손잡고 지난해 9월 차량 호출 서비스를 내놓는 등 기존 택시와 정보기술(IT)이 결합한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디디추싱 외에도 우버, 그랩, 인도 올라 등 세계 각국 1위의 승차공유 업체에 투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가까운 미래에 ‘소프트뱅크 모빌리티 얼라이언스’가 구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별도의 앱을 각각 깔 필요 없이 ‘자동 로밍’을 이용하듯 현지 교통 수단을 타는 시대가 온다는 전망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승차 공유는 세계가 교통 로밍으로 연결되는 것은 물론 자율 주행, 로봇 배송 등 라스트마일 딜리버리(최종 단계의 배송)로까지 이어지는 신사업의 시작점”이라며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해외 업체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