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작은 열쇠 하나로 … 마법의 삶이 열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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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처음 가진 열쇠

황선미 글, 신민재 그림, 웅진주니어
136쪽, 7500원

폐결핵을 앓는 말라깽이 소녀가 있었다. 병이 나으려면 잘 먹고 잘 쉬고 잘 치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 맏딸인 소녀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 밥을 해놓고 동생들을 씻기지 않으면 엄마한테 등짝을 얻어맞기 일쑤였다. 결핵 치료라야 의사 면허도 없는 친척 아저씨가 가끔 놔주는 주사가 고작이었다. 어느 날 소녀는 책이 잔뜩 있는 신기한 교실을 발견한다. 바로 학교 도서실. 그때부터 소녀는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듯" 책을 읽어대기 시작한다.

이 소녀가 훗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가 되리라고는 그 당시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작가로 성공한 소녀는 출판사에서 선물로 준 책들을 트럭에 싣고 "평생 글 쓰고 책 읽으면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키웠던 초등학교를 찾아간다. 그의 이름은 황선미. 55만부 이상 팔린'나쁜 어린이 표'(1999년)와 뮤지컬.애니메이션의 원작으로 각광받고 있는'마당을 나온 암탉'(2000년)의 작가다. 인생을 바꿔놓은 유년 시절 책과의 만남을 그린 이 책에서도, 진한 리얼리티를 품격 있는 문체에 실어 전달하는 작가의 솜씨는 빛을 발한다.

주인공 명자는 폐결핵 환자여서 늘 밭은 기침을 달고 산다. 그렇지만 달리기에 소질이 있어 육상선수로 뽑힌다. 엄마는 병자인 주제에 무슨 달리기냐고 화를 내지만 명자는 선생님한테 달리기를 그만두겠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 그런 명자가 학교 도서실을 알게 되면서 삶은 180도 달라진다. 도서실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사는 마법의 세상이었다. 도서실 선생님은 독서에 열의를 보이는 명자에게 교실 열쇠를 맡긴다. 도서실 열쇠는 가난 탓에 늘 자신감 없고 위축돼 있던 명자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초대하는 행운의 열쇠가 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익숙한 소재를 가슴 뭉클하게 요리하는 솜씨가 '역시 황선미'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진정 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힘들어질 때마다 명자의 독백을 새겨 보라고 얘기해주는 건 어떨까.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건, 가난한 게 아니다. 구박 받는 것도 아니고, 힘든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걸 못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110쪽). 초등 2학년 이상.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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