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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박 사이트, 수익 아닌 '판돈 전체'에 세금 내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불법 도박 사이트는 벌어들인 ‘수익’이 아닌, 회원들이 건 ‘판돈’ 전체를 과세표준으로 해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는 조세심판원의 결정이 나왔다.

20일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A씨 등 3명은 2013년부터 스포츠 경기에 게임머니를 걸고, 승패나 결과에 따라 게임머니를 얻거나 잃는 방식의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다. 회원들이 A씨의 차명계좌(대포통장)에 돈을 입금하면 게임머니로 바꿔주고, 이 게임머니로 베팅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불법사행산업 감시신고센터 직원들이 과천 청사에 마련된 모니터실에서 불법온라인도박 사이트를 감시하고 있다. [중앙포토]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불법사행산업 감시신고센터 직원들이 과천 청사에 마련된 모니터실에서 불법온라인도박 사이트를 감시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세청은 2017년 말부터 A씨 등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고, 지난해 2월 21개의 대포통장에 입금된 돈에 대해 “누락한 매출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내라”며 과세를 통보했다. A씨가 판돈을 받고 이용자에게 도박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에 부가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입금 총액에서 도박에서 이긴 이용자들에게 지급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를 ‘창출된 부가가치’로 봐야 한다”며 국세청의 결정에 불복하고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판돈’이 아닌 도박 사이트 ‘운영 수익’을 기준으로 부가가치세를 매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은 국세청의 이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운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도박 행위’와 도박판을 벌여 손님을 끄는 ‘도박 사업’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게 심판원의 판단이다.

조세심판원은 결정문에서 “도박행위는 일반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어서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 아니다”라면서도 “(해당 불법 도박 사이트처럼) 도박사업을 영위하는 경우, 고객이 지급한 돈이 단순히 도박에 건 판돈이 아니라 도박 사업자가 제공하는 재화 또는 용역에 대한 대가에 해당한다면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도박 사이트를 “정보통신망에 구축된 시스템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도박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서 금전을 받는 경우”로 봤다.

즉 판돈 전체가 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한 일종의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 대가’에 해당하고, 이는 부가가치세 대상이라는 의미다. 심판원은 “차명계좌 입금액인 도박 판돈 전액을 과세표준으로 해 과세한 것은 잘못이 없다”며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세심판원은 구체적인 부과 금액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조세심판원은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을 하면서 사법기관에 몰수된 금액에 대해서는 사업 소득에서 차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심판원은 “위법소득에 대하여 몰수나 추징이 이루어졌다면 경제적 이익을 상실해 소득이 종국적으로 실현되지 아니한 것”이라며 “국세청은 A씨의 몰수 금액을 재조사해 사업소득에서 차감하고, 그 과세표준 및 세액을 경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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