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한 미사일 '자살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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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강행했다. 4일 오전 3시32분부터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 소재 발사장에서 중거리 스커드 미사일을,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대포동2호로 추정되는 미사일 시험을 실시했다. 중국 당국까지 공개적으로 미사일 발사 강행이 초래할 한반도 위기를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북한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못 들은 채 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쏘아 올림으로써 국제사회와 미국에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뿐 아니라 다수의 미사일 발사 위협을 동시에 강행한 이유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다만 우리는 북한이 직면한 여러 상황과 관련해 볼 때 북한 지도자는 미사일 도박을 강행하는 것이 북한 체제 유지에 '손실'보다 '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밝혔듯이 미사일을 추가 발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지 않았을 경우 북한 체제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북한은 상당한 체면 손상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중국과 러시아까지 발사 유예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였다면 이들의 압력에 북한 지도자가 굴복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었다. 특히 얼마 전 미국의 전 국방장관 페리가 북한의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 공격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나서자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또 북한이 선제 공격을 당해도 응징 보복할 구실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에슈틴 카터 전 미 국방부 차관보의 발언도 북한에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형 장거리 미사일 외에 북한이 여러 개의 스커드 및 노동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응징 보복 능력을 과시한 대남 위협 발사 의도와 관련돼 있다.

북한은 미사일 도박을 통해 체제 보장과 관련한 몇 가지 이익을 기대했을 것이다. 첫째, 핵무기 체계의 완성을 내외에 확인받고 싶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2월 10일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상황에서 운반수단인 미사일 기술능력을 보여준다면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를 통해 북한은 이라크 후세인 정권과 같은 비극을 억제할 힘을 갖고 있음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둘째,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체제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난이 고착화되는 가운데 외부, 특히 대남 접촉이 증가하면서 북한 사회 내부에도 충성심 이탈이 관찰되고 있다. 셋째, 미사일을 대미 전략 등 전략카드로 만들어 위조지폐.인권문제 등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대응할 수 있다고 기대할 것이다.

이런 기대이익과 반대로 북한은 미국.일본 등 국제사회의 압박은 물론 중국 및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 조정이 초래할 체제 유지 부담이나 고통까지 계산했을 것이다. 미사일 발사에 따른 고통은 북한 당국보다는 북한 주민에게 온전히 전가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은 인민의 고통을 인질로 도박을 한 것이다.

현재의 위기상황과 직접 관련이 있는 장거리 미사일은 42초 만에 기능을 상실했다. 사거리 연장이 목적이었다면 실패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기술을 위한 실험일 수도 있다. 실패 여부와 관계없이 미사일 위기와 관련해 공은 미국.중국과 우리 정부 등으로 넘어왔다. 북한의 미사일 도박을 '자살골'로 만드느냐, 아니면 '전략적 득점'으로 만들어 주느냐는 한국과 국제사회의 인식 공유.공조에 달려 있다. 인민을 인질로 한 북한의 도박이 성공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을 대북정책에 엄격히 연계해 재검토하고,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미사일 도박이 북한의 자살골이 되도록 해야 한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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