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치는 기업기밀 도둑 5곳 중 1곳 '뚫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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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설비 제조업체 N사는 지난해 자동차 휠 생산 기계를 개발했다. 6개월 동안 고생해 개발했으나 자동차 휠 생산업체에 초기 계약분만 납품하고 추가 계약을 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설계 담당자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개발 노하우를 고스란히 들고 나갔다.

이 회사 관계자는 "노하우가 다른 업체로 넘어간 것으로 파악돼 향후 입을 영업 피해까지 감안하면 100억원대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네트워크 서비스업체 D사는 2000년 연구소를 설립하고 관련 기술 및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왔다.

하지만 사내 전산망이 네 차례에 걸쳐 해킹당해 관련 기술이 유출됐다. 방화벽을 설치했지만 해킹 기술이 발달하면서 무용지물이 됐던 것이다. 결국 경쟁업체에서 비슷한 제품을 먼저 내놓는 바람에 이 회사는 100억원대 매출을 기대했던 제품 출시를 포기해야 했다.

회사 기밀이 빠져나가 피해를 본 기업이 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400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6일 발표한 '산업기밀 유출 실태'에 따르면 20.5%가 기밀 유출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곳 중 1곳꼴로 피해를 본 셈이다. 이들 피해 기업의 기밀 유출 빈도는 평균 3.2회로 집계됐다. 가장 많이 유출되는 기밀은 생산기술정보(43.1%)였으며 ▶영업 정보(21.6%) ▶입찰 등 시장정보(18.6%) ▶연구 관련 정보(12.7%)의 순이었다. 기밀 유출로 인한 피해 규모는 1억원 미만이라는 업체가 39%를 차지했지만 100억원 이상 피해를 봤다는 기업도 3.6%나 됐다.

이처럼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기업의 대응과 사후 조치는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기업의 절반가량이 피해 사실을 파악하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방화벽을 구축.개선하거나(9.4%) 보안부서를 신설.증원(4.7%)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한 업체는 소수였다. 보안관리 규정을 강화(29.7%)하거나 문서.장비 관리시스템을 개선하는(26.6%) 등 관리체계만 바꿨다는 곳이 많았다. 5.5%는 피해를 보고도 보안체계를 전혀 개선하지 않았다.

한편 조사 대상 기업의 64.3%는 보안 예산이 부족하다고 응답했으며, 이 같은 응답은 대기업(51.3%)보다 중소기업(72.2%)에서 월등히 높았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밀 유출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기업 스스로 산업보안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도 관련 제도를 정비해 산업보안 기반을 마련하고, 산업보안이 취약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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