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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학생과 팀하기 싫다” 유학생 10만명 시대 커진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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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외국인 유학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취업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외국인 유학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취업 강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인 유학생 중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아예 수업이 힘든 친구들이 꽤 있어요. 일부는 유학이 아니라 유랑 하듯 놀러 온 학생들이고요.”

“일부 유학생 한국어 아예 못하고 #자료조사 분담시키면 구글 복사” #한국인 학생들 학점 피해 호소 #대학 ‘묻지마 유치’ 사후관리 부실

경희대 4학년 박모씨는 지난해 군 전역 후 복학하면서 달라진 학교 풍경에 깜짝 놀랐다. 듣는 수업마다 외국인 유학생 숫자가 4분의 1은 돼 보였기 때문이다. 박씨는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 되거나 불성실한 학생들도 있어 팀 프로젝트에서 같은 조가 되는 걸 꺼린다”고 말했다.

“수업마다 외국인 유학생 4분의 1”

고려대 3학년 김모씨는 지난달 중간고사 때 도서관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김씨는 “다들 시험공부 하느라 예민한데 앞자리의 중국인 학생 3명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유학생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수가 급증하면서 한국 학생들과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일부 유학생에게 국한된 이야기지만, 전체 유학생 규모가 커지면서 피해를 호소하는 한국 학생들이 늘고 있다. 또 무분별하게 유학생을 유치하고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교 측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유학생을 입학시키는 기준이 너무 낮고 입학 이후 관리도 안 된다”며 “이제 외국인 유학생 관련 정책을 정비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14년 5만7675명에서 2018년 9만9714명으로 급증했다. 유학생이 가장 많은 곳은 고려대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고려대는 어학연수생을 포함해 지난해 등록한 외국인 유학생이 4850명이었다. 가장 많았던 해는 2017년으로 5938명의 유학생이 학교를 다녔다. 2015년(3336명)과 비교해 거의 2배였다. 그 다음으로 경희대(4626명), 성균관대(3853명), 연세대(3140명) 순이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제일 많다.

고려대 3학년 윤모씨는 지난해 2학기 전공 수업 때 외국인 유학생과 같은 조로 활동하다 피해를 봤다. 윤씨는 “유학생 신분임을 배려해 간단히 자료조사만 부탁했는데 구글 검색에서 제일 위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복붙(복사해서 붙이기)’ 해서 왔더라”고 말했다.

윤씨는 현재의 유학생 관리 방식은 외국 학생에게도 한국 학생에게도 모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다. 한국 학생들은 그들이 학업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하고, 외국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왕따’ 같은 신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비수도권으로 갈수록 심각하다.

유학생 중도 학업포기 52% 대학도

전북대 1학년 유모씨는 “외국 유학생들이 한국어를 거의 못해서 깜짝 놀랐다”며 “말을 못 알아들어 수업 때 게임 같은 딴짓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수들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중국 학생들은 한국어도 못하지만 영어는 더 못해서 기본적인 소통이 안 된다”고 털어놨다. 교육부는 무분별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막기 위해 언어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 되는 학생만 선발토록 권고하고 있다. 4년제 대학의 경우 입학 시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 이상, 졸업 전까지 4급 이상 취득하는 조건이다. 영어는 토플(TOEFL) 530점 이상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권고’ 사항이기 때문에 이를 엄격히 지키는 대학은 드물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국회 교육위원장)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국립대 9곳의 유학생 현황 자료를 보면, 교육부의 언어능력 권고기준을 만족한 유학생은 41.1%에 불과했다. 심지어 전남대(2.4%)와 강원대 2캠퍼스(8.8%)는 평균에 한참 못 미쳤다. 이 의원은 “‘묻지마 유치’ 경쟁으로 대학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무분별한 유학생 늘리기는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들이 자격이 미달되는 유학생들까지 무리해서 받다 보니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은 지난해 중도 탈락률이 40.9%나 됐다. 유학생 10명 중 4명이 학교를 그만뒀다는 뜻이다. 강원도의 한 4년제 대학은 52.2%였다.

“왕따·인종차별로 이어질 우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여전히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린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10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유학생이라도 받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대학평가에서 국제지수를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유학생과의 갈등이 자칫 인종 차별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부 외국인 유학생과의 갈등 경험이 해당 국가 전체에 대한 선입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며 “문제가 더욱 커지기 전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만·전민희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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