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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훈련 중 예비군 산속 방치…‘입막음’ 240만원 건넨 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육군 사령부 동원훈련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스1]

육군 사령부 동원훈련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뉴스1]

동원훈련 중 실수로 산속에 방치된 예비군들에게 ‘민원제기 입막음용’ 현금 총 240만원을 송금한 초급장교 징계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춘천지법 행정1부(부장 성지호)는 초급장교 A씨가 육군 모 부대 사단장을 상대로 낸 감봉처분 취소 소송에서 “A씨의 감봉 1월 징계 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10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7월 초 강원 원주 한 군부대에서 2박 3일 일정으로 실시된 동원예비군 훈련 중 예비군 4명이 산속에 남겨졌다. 나머지는 모두 막사로 복귀했다. 소총까지 들고 있던 예비군 4명은 방치돼 있다가 뒤늦게 먼 거리를 걸어서 막사에 돌아왔다. 화가 난 예비군들이 강하게 항의하자 B중대장은 C대대장과의 면담을 주선했다.

면담에서 소대장인 A씨는 B중대장으로부터 C대대장이 예비군 4명을 조기 퇴소시키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지시대로 이행했다. 이후 A씨는 조기 퇴소 처리 시 향후 감사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C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이에 C대대장은 예비군들을 조기 퇴소가 아닌 강제 퇴소로 번복해 처리하도록 했다.

불만을 품은 예비군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했다. 소속 중·대대장은 입막음으로 총 240만원의 피해 보상금을 현금으로 예비군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이중 A씨는 40만원을 부담했다.

이 일로 B중대장은 예비군의 조기 퇴소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유로 ‘견책’, 예비군들을 훈련장에 방치하고 입막음으로 현금 100만원의 보상금을 부담한 D중대장은 ‘감봉 1개월’ 등 각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A씨는 상관의 지시에 따라 보상금을 일부 부담하고 예비군들에게 전달했다며, D중대장과 같은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은 것은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예비군의 조기 퇴소는 B중대장의 주도하에 이뤄진 것이고 자신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며 “강제 퇴소로 훈련을 다시 받아야 하는 예비군들의 손해에 대한 배상을 일부 부담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사건 무마를 위해 보상금을 일부 자부담까지 한 것은 상급부대에 알려질 경우 받게 될 불이익 처분을 피하려는 의도로써 품위유지 위반에 해당한다”며 “훈련 중 산속에 남겨진 예비군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과정에서 이 사건이 불거진 점으로 볼 때 일차적 원인은 예비군들의 불성실한 훈련 태도에 있었고, A씨가 비위 행위를 주도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계급·역할, 위계질서가 중시되는 군 문화 등으로 볼 때 상관 지시에 따라 이 같은 비위 행위를 한 A씨에게 D중대장과 같은 감봉 1월 징계 처분은 비례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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