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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수익률 올려라, 시중은행발 경쟁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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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용병

조용병

“조용병 회장의 특별지시로 퇴직연금 수수료 합리화 방안을 추진한다.”

신한금융 조용병 회장 승부수 #“퇴직연금이 금융 판도 바꿀 것” #4년 만에 수익률 꼴찌서 1위로 #수익 못내면 수수료 면제 검토

지난달 중순 신한금융그룹이 금융권을 술렁이게 만든 보도자료를 내놨다. 2018년 퇴직연금 수익률이 고작 1.01%라는 보도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컸을 때다. 은행권 1위(퇴직연금 적립금 기준) 신한금융의 행보에 다른 금융사까지 잇따라 수수료 인하 검토에 나섰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하는 거다. 내가 그렇게 선한 사람은 아니다.” 퇴직연금 수수료 인하에 관해 묻자 조용병 회장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퇴직연금이 금융권 판도를 바꿀 거다”고 단언했다. “소비자가 수익률을 보고 마음에 안 들면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꿔버릴 수 있게 시장이 바뀐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호주식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대비해 미리 치고 나가겠다는 뜻이다.

조 회장이 강조하는 건 첫째도 수익률, 둘째도 수익률이다. 그는 “수익률이 높으면 수수료를 떼도 고객이 말을 안 한다. 수익률을 고작 이만큼 내놓고 수수료는 이렇게 떼어 가면 나라도 ‘고객이 봉이냐’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조 회장이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외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초 한용구 당시 신한은행 연금사업부장은 거의 매일 조용병 당시 신한은행장의 전화를 받았다. 은행권 퇴직연금 사업자 13곳 중 신한은행의 2015년 수익률 성적표가 꼴찌였기 때문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라”는 은행장 지시에 따라 연금사업부는 바쁘게 움직였다. 금융권 최초로 50명 규모의 ‘퇴직연금 전문센터’를 만들었다. 확정급여형(DB) 고객을 위해 정기예금보다 금리가 0.5%포인트 이상 높은 구조화펀드도 최초로 판매했다.

그 결과 신한은행의 수익률(직전 1년) 순위는 올 1분기 말 기준으로 은행권에서 DB형 1위(1.56%), 확정기여(DC)형 2위(1.52%), 개인형 퇴직연금(IRP) 1위(1.4%)로 올라섰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금융회사가 관리하기 나름’임을 보여줬다.

신한금융은 그룹 차원의 새로운 퇴직연금 대표상품을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한용구 신한지주 원신한전략팀 본부장은 “가칭 ‘신한 인프라펀드’를 올해 안에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퇴직연금 선진국인 호주에서는 퇴직연금 자산의 13.5%가 부동산·인프라 펀드다. 대체투자가 호주 퇴직연금의 고수익률(연 평균 7.5%)의 비결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선 인프라 펀드를 찾기 어렵다. 공모펀드는 전체 자산의 10% 이상을 동일 종목에 투자할 수 없다. 인프라 펀드를 공모펀드로 만들려면 인프라 자산 10개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만들기가 매우 까다롭다.

신한금융은 글로벌투자금융(GIB) 부문이 프로젝트 금융을 제공하는 인프라 자산들을 묶어 공모 펀드로 내놓기로 했다. 그룹 차원에서 퇴직연금 수익률을 밀어주기 위해 만드는 신상품이다. 한 본부장은 “프로젝트 금융이 보통 20~30년 장기로 투자하기 때문에 퇴직연금과 만기가 잘 들어맞는다”며 “안정적이고 수익률도 ‘정기예금+α’가 가능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본부장은 “공모 인프라펀드는 미리 공개해도 다른 금융사가 바로 따라올 수 없는 상품”이라고 자신만만했다.

신한금융은 현재 50명 규모인 퇴직연금 전문센터의 고도화를 준비 중이다. 호주 등 선진국처럼 빅데이터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상담을 위해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정재영 신한은행 퇴직연금사업부장은 “퇴직연금 가입자는 무슨 상품에 가입할지 선택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며 “고객의 금융거래·상담 데이터를 분석해 꼭 맞는 상품을 찍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객이 전화 상담을 선호하는지, 알림톡이나 문자서비스를 편하게 생각하는지 등도 분석해 맞춤형으로 접근한다. 정 부장은 “100만 명의 DC형, IRP 고객 모두에게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사후관리엔 비용이 많이 든다. 매년 퇴직연금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데만 50억~60억원이 들어간다. 전문센터를 운영하려면 최소 50억원 이상이 추가로 필요하다. 비용이 꽤 들지 않느냐는 지적에 조 회장은 “투자 안 하고 돈 벌 생각을 하면 도둑놈”이라고 받아쳤다.

수수료 인하도 관심이다. 정 부장은 “수수료를 일률적으로 내리는 식은 아니고, 전체적으로 재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20, 30대 젊은층은 IRP 가입 시 수수료를 깎아줄 계획이다. “수익률이 마이너스인데 고객에게 수수료를 떼면 누가 좋아하겠느냐”라는 조 회장의 지적에 따라 마이너스 수익률엔 수수료를 면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신한금융은 누구를 경쟁 상대로 볼까. 조 회장에게 묻자 바로 답이 돌아왔다. 그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생각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이미 실제로 (퇴직연금 강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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