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활발해진 논의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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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핵 전력 면에서는 미소간에「공포의 균형」 에 의한 군사적 안정을 얻고 있지만, 통상전력 면에서 보면 미국은 소련에 비하여 분명히 열세에 놓여 있다. 특히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은 지리적으로 태평양을 건너 멀리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소련에 비해 매우 불리한 입장에 있다.
그래서 미국은 주일미군과 밀접히 연결된 주한미군을 최대로 활용하여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 영향력을 유지할 뿐 아니라 중국의 협력을 얻어 이 지역에서 결국 월등한 소련군사력의 봉쇄에 성공하여 미국의 약점인 통상법력상의 열세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한국군 오만 명이 미국의 핵 전력과 결합되어 미국의 작전지휘하에 움직일 때 미국은 동북아지역에서 소련군사력 봉쇄라는 군사면 에서 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관계에서 정치·외교적으로 큰 이익을 얻고있다. 이점은 주한미군의 형태로 이 지역에 확고한 발판을 가진 미국과 그렇지 못한 미국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질적으로 다를 것이라는 예상으로 증명된다.
먼저 일본관계에서 미국은 이 지역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미국에 우선하는 발언권을 요구하는 일본을 보게될 가능성이 크다. 또 군사력강화를 급격히 추진할 일본을 통제할 힘도 미국은 상당히 잃을 것이다. 더욱 미국에 대한 중국의 신뢰도 약화되어 미국이 지금과는 달리 이 지성의 당사국 아닌 「권외세력」으로 실제로 간주될 여지도 예상된다.
이상의 여러 점을 생각하면『한국 민이 원하지 않으면 철군을 단행할 수 있다』고 몇몇 미 당국자가 때때로 소리친 것은 아무래도 외교적 발언인 것 같다. 과거 한미교섭과정에서 미국은 종종 주한미군철수를 자기들의 요구조건을 관철하기 위한 협상카드로 동원한 일이 적지 않다.
이번에도 17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를 앞두고 여러 형태의 주한미군 감축 안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주한미군유지비 분담금을 더 많이 한국 측에 부담시키기 위한 교묘한 외교 책략적인 면이 분명 있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현재 엄청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로 약4천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채무국인 미국이 해외주둔군의 비용감축 등으로 국방비를 절감할 .길을 적극 찾고, 주한미군의 문제가 정부·의회·언론의 특별한 관심을 새삼 모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갖는 군사 및 외교적 이익 때문에 한국 측이 설사 주한미군을 당장 나가줄 것을 요청해도 상당한 기간동안 결코 철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일부 한국사람들의 지나친 주장도 근래에 와서는 미국사정으로 신뢰성을 많이 잃고 있다.
결국 여러 가지 면의 타협책으로 주한미군철수문제는 대충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이미 상식적으로 받아 들여지고있다.
즉 첫 째, 미국은 주한미군의 계속 유지를 통하여 동북아지역에서 지켜야 할 군사 및 정치적 이익을 계속 옹호한다. 단 주한미군유지의 비용은 NATO동맹국과 일본경우처럼 협상을 통해 가능한 한 한국 측에 분담시킨다.
둘째, 88년 말 현재 한국군의 재래식 병력은 북한 대비 65% 수준으로 평가되나, 86년도부터 군사력강화를 위한 투자가 늘어 현 추세대로 한국군 현대화를 계속하면 1995년 께에 대북한 군사력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을 조정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한미양국에 도움이 된다.(이런 점은 금년에 처음 발행된 한국의 「국방백서」 에 잘 밝혀져 있다)
따라서 이번 한미안보회의에서 미국 측이 수천 명 규모의 주한미군철수 안을 구체적으로 한국 측에 제시할 것이라든가, 혹은 상원에서 주한미군을 1만 명으로 감축요구법안이 제의되었다는 보도는 별로 놀라운 것이 없다. 이미 76∼77년에 「카터」대통령이 일으켰던 주한미군 철수는 쇼크에 비하면 덜 놀라운 일이다.
주한미군철수 계획이 지금부터 실천된다고 해도 그 계획은 사실상 10년 이상 연기되어온 것이 아닌가. 그만큼 우리정부와 군부는 준비할 시간을 가져온 셈이다.
이번에 제기되고 있는 주한미군철수논의는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준비해온 것을 맞는 것이기 때문에 쇼크처리법으로 처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이 국내정치를 경색 시킬 조건이 되어서도 안 된다. 또 GNP의 방위비 비율을 지금보다 3% 더 올린다든가, 군복무기간을 50개월로 연장하는 것 같은 조치로 우리경제에 무리를 주는 방향으로 처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욱 정부에 바라고 싶은 것은 이번 한미안보회의에서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와 한국의 주한미군 비용분담금증액문제가 논의되는 기회에 한미연합사 작전 권을 한국에 이양할 것을 미국 측에 요청하라는 것이다.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미군에 있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에 종속된 「식민지」라는 인상을 국내외적으로 주어 정치적으로 쟁점화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 주한미군의 경우는 한국의 내정에 개입하는 나쁜 역할까지 하고있다는 일반적 믿음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하루속히 한국의 순수한 동맹군으로서 단순한 군사적 역할만 담당하는 군대로 인식되어져야 한다. 한국과 주한미군관계도 NATO각국과 일본의 미군 관계 같은 것으로 속히 변해야 된다. 주한미군이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반환하면 그 철수가 촉진될 것이라는 염려는 지나친 기우다.
또 이번 기회를 계기로 미국당국자들로 하여금 미국이 주한미군으로 얻는 미국의 이익을 솔직히 인정케 하여 주한미군논쟁이 국내외에서 좀더 활발히 공개적으로 전개될 것을 바란다. 그것만이 주한미군은 한국통일을 방해하는 나쁜 외세라는 악명을 벗는 길이고 한미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기초가 될 것이다.<이호재·고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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