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레지던트 노조 생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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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레지던트 등 수련의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혁 회장)는 5일 노동부로부터 노조 설립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전공의협의회는 인턴이나 레지던트 등 수련 과정에 있는 전공의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했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나 일반인들은 벌써 의사노조의 파업을 걱정하고 있다. 의사들의 파업이 국민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이미 의약분업 과정에서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 "근로 환경 개선하자"=지난달 부산의 한 병원에서 전공의로 일하던 박모(33)씨가 상습적인 구타와 상식에서 벗어난 수련 시스템을 폭로하며 사직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선배로부터 각목이 부러질 때까지 맞기도 했고, 응급환자보다 선배 담배 심부름이 먼저인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배나 교수들을 위한 물품 구입 등으로 3개월간 개인 돈 2000만원을 쓰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많은 전공의가 의료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병원 내 각종 잡일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열악한 임금과 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004년 전공의 24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0%가'수련 환경이 나쁘다'고 응답했다. 또 전공의의 절반가량이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 1일 휴무한다고 가정하면 하루 평균 16시간 이상을 근무하는 셈이다. 월급은 평균 200만원 안팎이다.

◆ 응집력 있을까◆ =노조 설립을 주도한 협의회는 일단 11명의 발기인으로 출범했다. 앞으로 중소병원의 고용 의사까지 노조 가입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전공의가 노조에 가입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전공의의 수는 1만6000여 명에 이르고 1만3000여 명이 전공의협의회에 가입하고 있다. 협의회는 조사 결과 63%가 노조 가입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전공의의 처우가 서로 다르고, 인턴과 고참 레지던트의 근무 여건이 달라 하나의 세력으로 묶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의사포털사이트 '아임닥터'가 2~4년차 전공의의 연봉을 비교한 결과 최고 4800만원에서 최저 2000만원까지 들쭉날쭉했다. 한 전공의는 "수련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지만 대우와 근무 조건 등 구체적 사안에선 입장 차이가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레지던트 기간이 끝나면 개원의.교수.고용 의사 등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 전공의 노조가 얼마나 강한 응집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유럽과 일본에서도 의사들이 산별노조에 가입하는 경우는 있지만 독자적으로 노조를 만든 사례는 거의 없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외국에선 의사들이 대부분 산별노조 내의 의료 부문에 가입돼 있다"며 "비록 산별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의료제도 개혁, 의료 공공성 강화 등에서 전공의노조와 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병원 경영 악화 우려=병원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사립대병원과 종합병원의 경영을 악화시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응급실 등 현장에서 실질적인 '손발'이 되고 있는 전공의들이 집단 파업을 벌이면 의료대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2000년 의약분업으로 벌어진 집단 진료 거부 투쟁에서 전공의들은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전국수련병원장들은 4월 성명을 통해 전공의의 노조 설립 자제를 촉구했었다. 병원협회 정동선 사무총장은 "현재 병원의 부도율이 9%대에 이르고 약값을 못 줘 제약회사에 경영권을 넘기는 병원들도 있다"며 "만약 전공의노조에 중소병원의 고용 의사까지 가입한다면 병원 경영난과 의료의 질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도 B종합병원 원장은 "기존 보건의료노조와 산별교섭을 하는 것도 버거운데 전공의 노조까지 생기면 병원들은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된다"고 우려했다.

정철근.김영훈 기자

◆ 의사의 종류=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 시험에 합격하면 의사가 된다. 이때부터 일반적으로 1년간 인턴, 4년간 레지던트로 일하며 실무를 익힌다. 이처럼 수련 과정에 있는 의사를 '전공의' 또는 '수련의'라고 부른다. 이후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면 '전문의'가 된다. 고용 관계에 따라 병원에 고용된 의사는 '봉직의', 개인 병원을 연 의사는 '개원의'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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