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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아키히토와 맥아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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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상징으로서 나를 받아들이고 지지해준 국민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하다”란 아키히토 일왕의 퇴임사를 들으며 떠오른 미국인들이 있다. 우선 리처드 풀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해군 소위로 일본의 ‘평화헌법’을 만드는 데 관여했다. 특히 일왕 관련 조항이다. 신(神)이었던 일왕을 그저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symbol)’으로만 규정했다. 물론 아이디어 자체는 일본 군정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로부터 나왔을 거다. 퇴위든 폐위든 어떤 식으로든 히로히토 일왕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연합국들의 요구를 뿌리쳤다. 그래야 일본군의 무장해제도, 평화헌법도 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비밀 전문에서 “일왕은 일본인을 통합하는 상징”(뉴욕타임스)이라고 썼다.

퀘이커 교도인 엘리자베스 바이닝도 있겠다. 1946년부터 4년간 아키히토 왕세자의 교사였다. 자신의 수업에선 왕세자도 여느 아이처럼 영어 이름(Jimmy)으로 불리도록 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동시대 일본인보다 훨씬 더 자유주의적이며 평화주의적 태도를 보인 건 바이닝의 영향 때문일 것이라고들 말한다. 바이닝은 히로히토 일왕이 자신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실제론 미 군정의 결정으로 알려졌다. 맥아더가 직접 바이닝에게 교육 상황을 묻기도 했다고 한다.

전후 일본은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일본학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이안 부루마는 “평화주의는 일본인을 지키기 위해 외부에 완전히 의존하게 만드는 대가를 지불했다. 이는 우파들의 복고주의를 되살아나게 했으며, 합의가 있어야 마땅한 자리에 한 가지 문제에 대한 양극화된 정견이 대두했다. 문제는 헌법 그 자체였다”(『근대 일본』)고 썼다. 우린 일본의 불쾌한(또는 부당한) 면에만 집중하곤 한다. 그러나 이해하고 살펴야 할 복잡미묘한 맥락도 있다. 일왕 교체를 보며 든 생각이다.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