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플랫폼 폴인(fol:in)의 스토리북<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의 첫번째 이야기 ‘프레임몬타나_브랜드와 고객은 어떻게 끈끈한 관계가 되는가’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소셜 살롱 비마이비(Be My B)가 폴인 웹사이트에서 연재하고 있는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은 살롱에서 오간 매력적인 브랜드의 뒷이야기를 담습니다.
"전 마케팅으로 고객을 얻고, 고객들은 저에게 정보를 얻고요. 그게 공정한 거라고 생각해요. 스포츠맨십처럼."
안녕하세요, 최영훈입니다. 제가 프레임몬타나를 시작한 지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프레임몬타나를 준비하면서 저에게 일어난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싶습니다.
패션 덕후는 어떻게 안경 브랜드를 만들었나
우선 간단히 저에 대한 설명을 드릴게요. 저는 좀 이중인격자에요. 좋아하는 책도 지킬박사와 하이드고, 어렸을 때는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아수라백작도 좋아했고요. 제 인격을 보면 반 정도는 선비 같고 나머지 반은 히피 같아요. 두 자아가 충돌하면서 인생이 되게 힘들었는데 요즘 제 자아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전 굉장히 모범생처럼 살았어요. 제 나이 때는 지금보다 다양성이 없었어요. 고등학교 인문계열을 나오면 대학교는 상경계열에 진학하고, 대기업 가서 임원 되고 회사 사장하고 이런 게 가장 좋은 길이었어요. 그 길 밖에 없기도 했고요. 종합상사 가서 좋은 아이템을 발굴해 나와서 사업하는 정도가 새로운 길이라고 볼 수 있었죠.
제 경우에도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대학에 진학해 첫 직장으로 현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직장을 계속 다니다 보니 저랑 너무 안 맞더라고요. 회사를 나와 해외유학을 가보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미국 MBA를 가는 게 꿈이었고 다녀왔더니 마침 파이낸스 혹은 컨설팅 쪽이 붐이었어요.
요즘은 컨설팅이 3D라고 분류되기도 하지만 당시엔 대우가 좋았어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사흘 밤을 새기도 하고.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가 어느 날 문득 제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직장인들처럼 빨리 승진하고, 빨리 연봉 높이는 것만 보고 달려왔는데 갑자기 인생에 회의감이 들었고 40살이 넘어가면서부터 정말 못해먹겠더라고요. 그만 두고 제가 준비했던 사업을 시작했어요.
석유화학 제품을 수출하는 사업이었어요. 그 분야를 정말 잘 알아서 시작했던 건 아니고 그간 쌓아온 인맥과 컨설팅 경험을 고려해서 선택한 사업이었습니다. 회사가 안정되면서 제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제일 재미있어하던 일이 패션 분야였어요. 그런데 시장을 살펴보니 옷 장사 같은 건 안 되겠더라고요. 경쟁자도 많고 규모가 커야겠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안경점을 방문했습니다. 놀랍게도 사고 싶은 안경이 단 한 개도 없었어요. 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었던 거죠.
안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 몰랐으니 무식하게 시작했죠. 당시엔 아무도 뿔테 안경을 안 쓸 때였고 클래식 안경이란 시장 자체가 없을 때였어요. 이렇게 무식하게 시작한 브랜드가 프레임몬타나였습니다. 여러모로 완전 역발상으로 움직였어요. 시장의 흐름과 전혀 반대로, 제 고집대로 제가 좋은 대로 원가에 상관없이 만들었어요.
팔로워 8만명, 몬타나 최의 인스타그램 노하우
5년 전의 저는 페이스북도 안 하던 사람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SNS에 올린다고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짜증내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게 저였어요. 그러던 사람이 이제 사진을 찍어달라고 주변사람들을 괴롭혀요. 사업을 시작한 시점과 인스타그램을 접한 타이밍이 좋았고 제 관심분야였던 패션 이야기가 많은 분들의 공감을 받으면서 프레임몬타나란 브랜드가 만들어지는데 복합적인 시너지를 냈어요. 제품 론칭도 잘 됐고요.
시장의 주류가 아니었던 클래식, 빈티지 스타일의 안경테가 그것도 30만~40만 원 정도의 제품이 온라인에서 출시되었을 때 하루 매출이 3억이 넘었어요. 물론 제 인스타그램의 인기가 큰 영향을 줬을거예요. 하루 3억 매출을 찍은 뒤 당연히 매출은 떨어졌고요. 하지만 제품을 론칭하고 지금까지 프레임몬타나가 꾸준히 성장한 이유는 본질, 즉 제품의 퀄리티에 집중한 덕분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왜 프레임몬타나를 준비하고 론칭하는 과정을 모두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냐고 물어보셨어요. 노하우를 다 공개해도 괜찮냐고 걱정하셨죠.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게 인스타그램밖에 없었어요. 경영 컨설팅을 10년 넘게 했지만 제 전공은 재무 쪽이었어요. 경영관리, 전략 프로젝트는 많이 해봤는데 브랜드는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어요. 마케팅 전공자도 아니고요.
근데 막상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느낀 게 마케팅은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구나. 먹고살기 위해서 땅바닥에 떨어지거나 극한 상황이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마케팅이구나 싶었어요. 창의력과 절박함을 가지고 하는거죠. 저는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웃음)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릴 때도 아무거나 막 남기기가 싫었어요.
게시글을 올릴 땐 정보를 주거나 재미를 주거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주자라는 생각으로 인스타그램을 했어요.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를 하기 전에도 그랬어요. 억지로 유머를 하기도 하고, 사진도 어플 같은 걸 쓸 줄 모르니 각도를 잘 잡아서 찍어 올리고요. 이런 게 그냥 서비스 정신의 연결 선상이었던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 성공 비결은 서비스 정신
사람들이 물어봐요. “어떻게 그렇게 인스타그램을 잘하세요?” 저는 그냥 서비스 정신으로 하시라고 해요. 재미든 정보든 뭐든 하나는 주라고. 저는 처음에 옷 정보를 엄청 드렸어요. 개인적으로 핏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 아니면 시답잖은 아재개그를 썼어요. 그러니깐 다들 40대 아재가 애쓴다 이러면서 좋게 봐주셨어요. 어릴 적부터 틀에 갇히는 게 싫었고 학교 다닐 땐 산만하다고 혼나기도 했어요. 그래서 브랜드 론칭 과정도 정제하지 않고 다 공개해보자 싶었어요.
물론 목적은 홍보였죠.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제가 경영 컨설팅을 10년이나 했으니깐 고객들에게 정보든 재미든 뭐라도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프레임몬타나가 성공까지 하면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어요. 지금 보면 유치한 것도 많고 틀린 얘기도 많아요. #덕후질에서길찾기 #실전MBA란 태그를 달았던 글을 모아서 책을 만들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경영을 공부해보면 비즈니스 케이스가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차피 성공한 사업모델에 말을 붙이는 거니깐. 비즈니스 케이스는 1000개가 넘어요. 결국 상황에 따라, 비즈니스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거죠. 참고는 될 수 있겠지만 죽은 공부라고 볼 수 있어요. 실전 MBA는 진짜 공부가 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입니다. 제 인스타그램 철학은 간단합니다. 전 마케팅으로 고객을 얻고, 여러분은 저에게 정보를 얻고요. 이게 공정한 거라고 생각해요. 스포츠맨십처럼.
※지금까지 읽은 최영훈 대표의 이야기는 전체 분량의 30%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지식 플랫폼 폴인(fol:in)이 브랜드 소셜 살롱 비마이비(Be my B)와 함께 만드는 디지털 스토리북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0. 프롤로그_요즘 브랜드는 브랜딩도 달라야 한다
1. 프레임몬타나
2. 성수연방
3, 뉴닉_5월 1일 공개
4. 미니_5월 8일 공개
5. 밀리의서재_5월 15일 공개
6. 플레이스캠프_5월 22일 공개
7. 유튜브 인플루언서_5월 29일 공개
8. 빙그레_6월 5일 공개
9. 오늘의집_6월 19일 공개
10. 피크닉_6월 26일 공개
11. 매거진B_7월 3일 공개
12. 추후 공개
13.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