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학적 안전 부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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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안기부의 서경원 의원 입북사건 수사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도 검찰송치기간이 나흘 남아있고 그 이후 검찰이 30일간 더 합법적 수사를 할 수 있어 아직 그 결과를 예단 할 수는 없다.
간첩·보안법관계 수사는 원래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안기부가 왜 빨리 속 시원히 전모를 못 밝히느냐는 국민들의 조급증에 일일이 답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요즘 정부와 민정당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단순히 수사가 어렵다는 본질의 문제를 떠나 과연 우리 공안당국이 사건관리능력이 있는지, 지금 하고있는 수사방식이 정상적인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우선 수사당국은 임의동행을 거부하는 이철용 의원을 강제연행하기 위해 엄연히 승객이 탄 여객기를 0분씩이나 하늘에 묶어놓는 일을 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비난에도 불구, 민정당 과 수사당국은 왠지 이 의원 수사에 대해서만큼은 자신 있고 느긋한 배짱을 보였다.
안기부내의 감을 짚어본 민정당 간부들은 수사당국보다 한술 더 떠 「국가 제1의 정보수사기관이 웬만한 확증 없이 현역의원을 연행하려 했겠느냐』며 귀엣말로 『이 의원은 조사 받자마자 구속될 것』이라는 장담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의원은 48시간이 지나자 풀러 났고 패기만만한 표정까지 지었다.
일이 이쯤 되자 정부 요로와 민정당은 적이 당황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수사 당국의 「성 급」과 「졸속」을 나무라는 소리가 적지 않다.
한 간부는 『피의자의 부인과 묵비권 행사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인데 이것저것 재지 못하고 강제연행소동을 벌여 모양만 우습게 됐다』고 꼬집었다.
한겨레신문 윤재걸 기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과 신부들에 대한 관용이 법 집행의 균형을 깨뜨렸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가운데 여권관계자들은 국사범들에게 가혹행위를 하지 않는 「민주수사」가 얼마나 어려운가만 수군거리고 있다. 아울러 안기부의 운영·관리·인사가 모두 5공·6공을 거치면서 엉망이 되었다고 한탄한다.
조직적 대응으로 과학적 수사를 하지 못한 것이 꼭 「조상 탓」만인가. 지금이라도 분발하지 않으면 좌익으로부터 우리의 체제를 지켜야겠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정부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진><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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