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식 평축 행사에 으스스한 한기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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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워싱턴 포스트="본사특약">
북한은 8일 끝난 평양 세계청년 학생축전을 위해 걸어다닐 수 있는 모든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의장병보행·무용·노래를 훈련시키는 것 같다. 일곱 살 짜리 국민학생 수천명 이 무릎을 굽히지 않고 다리를 높이 들어 행진하는 모습은 너무나 일사불란했다.
북한의 이번 행사는 서울올림픽으로 획득한 한국의 경가를 와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치러졌다. 축제를 위해 이 폐쇄된 나라를 찾은 수 천명의 외국인중 다수는 대규모 행사규모와 군대식 스타일에서 으스스한 한기를 느꼈다. 이들은 대회가「위대한 수령」호칭이 붙어 다니는 독재자 김일성에 대한 칭송으로 일관됐다고 말했다.
평소 자동차가 별로 없어 사실상 교통공백 상태인 평양의 넓은 가로는 1만5천명의 외국내방객을 실어 나르는 새 자동차와 버스로 분주했다. 이번 행사기간 중 평양을 찾아온 외국인은 6·25 동란 이후의 방문객을 모두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숫자다.
시내는 전시를 방불케 했다. 국방색 군용트럭이 열을 지어 이 경기장에서 저 경기장으로 주민들을 실어 날랐다. 청색제복차림의 국민학교 아동들은「위대한 수령」과「경애하는 지도자」라고 불리는 아들 김정일의 찬양가를 부르며 거리를 행진했다.
행사경비는 4백만 내지 9백만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보도매체를 통해 전 세계가 대회를 지켜보고 있다고 주민들에게 홍보했다. 주민뿐 아니라 방문객, 특히 외국언론인들에게 북한은 인권을 유린하고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는 서방의 비난과 달리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나라라고 설득시키려고 부산했다. 녹음이 우거지고 깨끗한 평양은 곁으로는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북한은 판이한 현실이라고 동구 외국인들은 설명했다.
『평양은 북한이 아니다』, 『평양은 전시장일 뿐』이라고 한 소식통은 귀띔했다.
서방기자들에게는 안내원이 한 명씩 배정 됐다. 안내인은 통역과 문화사절과 정치요원의 기능을 수행했다.「위대한 수령」의 생가, 시범공장, 시범학교, 시범병원, 시범아파트, 그리고 시범가정 등 가 볼만한 허가된 장소로 내방객을 안내하는 게 이들의 임무였다.
김일성에 대한 방문일정도 마련됐다. 이런 곳엘 가면「위대한 수령」과「경애하는 지도자」가 한번 앉았던 의자 등 기념물이 보존돼 있었다.
사실보도는 저지됐다. 수백명의 기자들에게 배정된 호텔에 시내전화는 1대였다. 이철신 이라는 이름의 고위정부관리는 한 인터뷰에서 『당신이 만약 우리 나라에 대한 사실을 왜곡 보도하면 당신과 당신의 신문은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0여명의 미국 언론인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노골적인 협박을 받았다.
자급경제를 고수하는 이 빈국에서도 호텔만은 프랑스 포도주, 일제 라디오 등 사치품들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김일성 칭송을 위해 파리에 있는 것보다 더 크게 세워진 평양개선문 주변의 상점들도 맥주·우산·스테레오 등 각종 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그러나 여 점원들은 불안한 표정의 북한고객 대부분들로부터 대금을 받지 않았다. 주민들은 상품들을 구경할 수 있을 뿐이었다. 상품은 분명히 판매용이 아니라 전시용이었다.
북한은 인권침해에 관한 비난에 대해 인권침해사실을 부정해 왔다. 특히 행사기간중 이 대목을 얘기하려던 외국선수단을 명백히 방해했다.
당국은 못마땅한 대표단의 국기를 치워버렸다. 북한이나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이 회견 등에서 나오면 공식통역들에 의해 묵살됐다.
특히 중국에 대한 비판에 북한당국은 민감했다. 천안문 무력진압에 대한 대표단의 토론이 열렸을 때는 본격적인 방해까지 있었다. 서구 대표단 수명은 토론장에 가려고 나섰으나 버스편의 제공이 없어졌는가 하면 운전사가 갑자기 병이 났다. 주최측은 불행스런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
서방기자 한 그룹은 버스를 타고 평양시내를 1시간 반 동안 헤맸다. 평양에서 태어났다던 운전사와 안내원은 회의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의장소는 호텔에서 걸어가더라도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있어서 못 찾을 수가 없는 곳이라고 상주하는 사람들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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