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퀄컴이 종전 선언한 날, 삼성 뜻밖의 '5G 찬스' 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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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의 애플과 퀄컴이 최대 270억 달러(약 30조원) 규모의 특허 소송을 둘러싸고 지난 16일(현지시간) 전격 합의한 직후, 또 다른 칩 생산업체 인텔은 예기치 않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인텔 모바일 5G모뎀칩 포기 선언 #5G 모뎀칩 양산업체 전세계 3곳 #퀄컴 최대 수혜 … 삼성도 입지 강화 #‘2030년 비메모리 1위’ 기회 커져 #내년 5G폰 출시 앞둬 다급한 애플 #모뎀칩 확보하려 퀄컴소송 접은 듯

“모바일 사이즈에 맞는 5세대 이동통신(5G) 용 모뎀칩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PC용 4G, 5G 모뎀과 네트워크 인프라 사업에 집중하고자 한다.”

아이폰에 모뎀칩을 납품하는 인텔이 모바일 5G 모뎀칩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발표였다.

2016년 아이폰7 때부터 애플에 LTE 모뎀을 납품했던 인텔의 5G 모뎀칩 개발 속도는 예상 대비 더뎠다고 한다. 전 세계 스마트폰 영업이익률 1위 업체(애플)와 모바일 칩 1위 업체(퀄컴)가 특허 분쟁을 종료하기로 하자,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순식간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현재 미 이통업체 AT&T가 서비스 중인 5GE. LTE이지만 5G에 버금가는 속도를 구축했다는 의미에서 5G에 E를 붙였다. [사진 씨넷]

현재 미 이통업체 AT&T가 서비스 중인 5GE. LTE이지만 5G에 버금가는 속도를 구축했다는 의미에서 5G에 E를 붙였다. [사진 씨넷]

내년에 퀄컴칩 단 5G 아이폰 나올듯

일단 애플과 퀄컴은 향후 6년간 '특허 공유(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맺기로 했다. 경우에 따라 2년 더 연장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번 합의에 따라 애플이 향후 내놓을 아이폰 5G 모델에도 퀄컴의 모뎀칩이 탑재될 전망이다. 전 세계 아이폰 이용자 역시 내년엔 5G 아이폰을 만나볼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선 인텔의 5G 모뎀 사업 포기를 미리 접한 애플이 퀄컴에 선수를 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사업 포기를 발표한 직후,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스마트폰 모뎀 사업에선 수익을 내는 확실한 길이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설명했다. 모바일 이전 PC 시대만 하더라도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같은 미국 업체인 AMD가 치고 들어왔지만, 양강 체제를 유지했다. 5G 모뎀칩 개발을 포기하면서, 인텔의 입지는 5G 시대에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텔과 달리 퀄컴의 입지는 반도체 시장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애플은 이번 소송을 제기하며 스마트폰 한 대당 도매가의 약 5%를 받는 퀄컴의 로열티 산정 방식에 대해 "불공정 거래"라고 주장했지만, 양사 간 합의에 따라 퀄컴은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지켜냈다. 애플이 지난해 수십억 달러의 로열티 지급을 중단한 이후, 퀄컴은 지난해 브로드컴으로부터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받는 등 어려움에 처했다.

미국 현지 외신 "애플이 타월 던졌다" 

로저 케이 엔드포인트 테크놀로지 애널리스트는 미 정보기술(IT)매체 씨넷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를 두고 "애플이 타월을 던진 것(항복한 것)"이라고 평했다. 현재 퀄컴은 스마트폰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전화ㆍ인터넷을 가능케 하는 모뎀칩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이다. 퀄컴의 5G 모뎀칩은 LG전자 V50뿐 아니라 소니·모토로라·샤오미 등 해외 업체, 삼성전자의 해외 판매 분에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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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모뎀칩을 양산할 수 있는 업체는 현재 퀄컴과 중국 화웨이(자회사 하이실리콘), 삼성전자 등 3곳만이 꼽힌다. 대만 미디어텍은 아직 5G 모뎀 양산에 성공했다고 밝히지 않았다. 5G 모뎀칩은 주파수 신호를 증폭하는 빔포밍 등 기존에 없던 기술이 추가돼 부피를 줄이는 일이 LTE 모뎀 대비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퀄컴의 최신 5G 통신칩 스냅드래곤 X55. [사진 퀄컴코리아]

퀄컴의 최신 5G 통신칩 스냅드래곤 X55. [사진 퀄컴코리아]

인텔이 휴대폰용 모뎀칩을 포기함에 따라 삼성전자는 그간 약세를 보였던 비메모리 시장에서 파이를 키울 기회를 맞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10 5G에도 자사의 5G 모뎀칩 ‘엑시노스 모뎀 5100’을 탑재했다. 5G 모뎀을 비롯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는 이재용(50) 부회장이 최근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삼성전자는 5G 통신칩 시장에서 앞으로 5년 내 퀄컴과 양강 체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삼성, 퀄컴과 5G 통신칩 양강체제 목표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인텔의 시장 철수로 인해 삼성전자로선 5G 모뎀칩 분야에서 일종의 '과점 효과'를 누릴 계기를 맞이했다"며 "퀄컴의 모뎀 시장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지겠지만, 삼성 역시 하기 나름에 따라 시장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지난 4일 5G 모뎀 '엑시노스 모뎀 5100'과 함께 내놓은 무선 주파수 송수신 반도체 '엑시노스 RF 5500', 전력 공급 변조 반도체 '엑시노스 SM 5800'. 일종의 5G 토털 모뎀 솔루션이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지난 4일 5G 모뎀 '엑시노스 모뎀 5100'과 함께 내놓은 무선 주파수 송수신 반도체 '엑시노스 RF 5500', 전력 공급 변조 반도체 '엑시노스 SM 5800'. 일종의 5G 토털 모뎀 솔루션이다. [사진 삼성전자]

애플이 5G 스마트폰을 더 많이 만들어낼수록, 5G 모뎀칩 역시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퀄컴 다음으로 삼성전자가 수혜를 누릴 전망이다. 애플은 최근 삼성전자에 5G 모뎀칩을 공급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삼성이 "양산 물량이 부족하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경 자세로 인해 미국 내 입지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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