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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최선희의 화려환 귀환…첫 미션은 북·러로 이이제이?

중앙일보

입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노동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새로 선출된 당 및 국가지도기관 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맨 왼쪽 홍일점이 최선희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노동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새로 선출된 당 및 국가지도기관 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맨 왼쪽 홍일점이 최선희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하노이 2차 북ㆍ미 회담 결렬 후 북한 대미 외교라인의 핵심 최선희가 존재감을 부쩍 키우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기다리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가운데 최선희에서 힘을 몰아주는 모양새다.

최선희는 2차 북ㆍ미 정상회담 직전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에게 밀리는 듯했다. 지난 1월 워싱턴에서 열린 북ㆍ미 실무협상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이 최선희가 아닌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를 데리고 가면서 “최선희가 힘이 빠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시 최선희는 워싱턴 대신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해 외교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와 3자 비공개 회동을 열었다.

그러나 정작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최선희는 김정은 위원장의 불편한 심기를 기자회견 등을 통해 대변하는 등, 핵심적 역할을 도맡고 있다. 최선희는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미국이 황금 같은 기회를 내팽개쳤다. 왜 (정상회담에서와는) 다른 발언을 내놓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지난 12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선 외무성 부상(차관)에서 제1부상으로 승진했으며, 북한 내각의 핵심 기관인 국무위원회 위원에도 진입했다. 강석주(2016년 사망)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뒤를 잇는 명실상부한 후계자로 인증을 받은 셈이다. 김계관 제1부상이 빠진 외교위원회에도 최선희 제1부상이 대신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일 새벽(현지시간) 제2차 북미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대북 소식통은 “최선희에겐 생부와 함께 두 명의 아버지가 있는데, 업무상의 아버지가 김계관, 수양 아버지가 최영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이라며 “이제 공히 최선희가 아버지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 고유환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대미 라인의 핵심인 김계관 제1부상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다”며 “김계관에서 최선희로 북한 대미라인의 무게추가 이동했다”고 평했다. 고 교수는 또 “김 위원장이 하노이를 계기로 대미외교 주도권을 통전라인에서 외무성 라인에 돌려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스웨덴 실무협상을 마치고 회담장을 떠나고 있다. 오른쪽은 스웨덴 현지 수행원. 최선희는 이 수행원과 유럽식 볼 뽀뽀 인사를 나눴다. 김성탁 특파원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스웨덴 실무협상을 마치고 회담장을 떠나고 있다. 오른쪽은 스웨덴 현지 수행원. 최선희는 이 수행원과 유럽식 볼 뽀뽀 인사를 나눴다. 김성탁 특파원

최선희는 영어에 능통하고 배짱도 두둑하다는 게 그를 만난 복수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그는 과거 6자회담에서 북한 대표인 김계관의 통역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지만 실제 역할은 단순 통역 이상이었다고 한다. 6자회담 현장을 목격한 외교소식통은 “김계관의 말을 단순히 옮기는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수정해서 발표하곤 했다”고 말했다.

미국과는 인내심 싸움에 돌입한 북한이 현재 활발한 교류를 하는 상대는 러시아다. 러시아발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달 26~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ㆍ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들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와 밀착하며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최선희와 외무성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이다. 고유환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과는 4번을 만났는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한 번도 만난적이 없다”며 “형평성 측면에서도 만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북ㆍ러 정상회담은 북한에겐 대북 제재 완화 전선에서도 의미 있는 행보다.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P5) 중 하나라는 점에서다. 고 교수는 “북한이 대북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은 하지만 제재 완화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며 “P5로서의 러시아의 존재감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2002년 8월 러시아를 방문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2000년 대통령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북한을 택했다. [중앙포토]

2002년 8월 러시아를 방문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2000년 대통령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북한을 택했다. [중앙포토]

푸틴 대통령으로서도 북ㆍ러 정상회담은 외교적으로 윈윈 카드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북한을 첫 방문지로 택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평양에서 만나며 드라마틱한 외교 효과를 누렸다. 당시 만남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2017년에서야 “김정일이 그때 내게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시 푸틴 대통령이 관련 사실을 미리 국제사회와 공유했다면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전망도 외교가 일각에선 나온다. 러시아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과 러시아는 각자 외교적으로 필요가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서로를 활용하며 돌파구를 마련해왔다”며 “이번 북ㆍ러 정상회담 전망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한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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