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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절반의 승리'…재지정 평가가 입시 경쟁률·존폐 변수

중앙일보

입력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회원들이 이날 열린 자사고 학생 선발 시기 및 자사고-일반고 중복 지원 금지 관련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선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회원들이 이날 열린 자사고 학생 선발 시기 및 자사고-일반고 중복 지원 금지 관련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선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중3 학생들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중 한 곳과 일반고에 동시에 지원할 수 있다. 입시도 전년도처럼 12월에 일반고와 같이 이뤄진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자사고의 우선선발과 지원자들의 이중지원을 금지한 교육부 시행령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했다. 자사고와 일반고를 동시에 선발하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0조 1항은 합헌이라고 판단했지만, 학생들이 자사고와 일반고에 중복 지원하는 것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81조 5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절반의 승리' 교육당국·자사고 모두 "아쉽다"

 그동안 자사고는 ‘전기고’로 분류돼 학생을 미리 선발했고, ‘후기고’인 일반고는 자사고·특목고가 학생을 선발한 뒤인 12월에 학생을 뽑았다. 교육부는 자사고 폐지 정책의 하나로 2017년 12월 시행령을 개정해 자사고·특목고와 일반고의 모집 시기를 일원화하고, 자사고 지원자가 일반고에 중복 지원하는 것을 금지했다.

서울자율형사립고학교장연합회 김철경 회장(대광고 교장)을 비롯한 22개 자사고 교장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기준인 '운영성과평가'에 대한 거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자율형사립고학교장연합회 김철경 회장(대광고 교장)을 비롯한 22개 자사고 교장들이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기준인 '운영성과평가'에 대한 거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자사고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는 학생 혼란을 막기 위해 자사고와 일반고 중복 지원 금지를 유예했다. 그래서 지난해 자사고 입시는 모집 시기는 일반고와 같았지만, 중복 지원은 가능한 체제였다. 이번 헌재 결정이 중복 지원만 위헌으로 봤기 때문에 올해도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입시가 치러진다.

 이번 헌재 결정을 놓고 자사고 폐지를 추진해온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교육부는 "헌재 결정을 존중해 시행령 개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짧은 의견문만 내놨다. 교육부 관계자는 "당초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사실이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도 "자사고 지원 학생이 떨어져도 일반고에 중복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둠으로써 여전히 자사고가 학생 선점권을 갖게 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자사고들은 그나마 다행스럽다면서도 전부 위헌이 나오지 않아 불만스러운 반응이다.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은 "중복 지원을 할 수 있게 됐으니 절반의 승리라고 봐야 하지만 자사고가 후기고가 됐기 때문에 궤멸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자사고와 일반고 입시를 동시에 치르면서 교육감에 따라 자사고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다른 방법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김종필 중앙고 교장은 "우선 선발권 폐지까지 위헌이 나왔다면 자사고 존재 가치를 명확히 인정받았을 텐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자사고 존폐, 재지정 평가로 넘어가 

 결과적으로 이번 헌재 결정은 문재인 정부의 자사고 폐지 3단계 로드맵 중 1단계 효과를 약화시키게 됐다. 교육부가 2017년 발표한 로드맵에 따르면 1단계는 자사고 입시제도 개선, 2단계는 엄정한 재지정 평가를 통한 일반고 전환, 3단계는 전반적인 고교 체제 개편이다. 1단계 조치의 핵심이 자사고 우선 선발권 폐지와 일반고 중복 지원 금지였는데 '반쪽'이 된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에 따라 각 시·도교육청의 재지정 평가를 통한 자사고 폐지 압박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자사고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5년마다 운영성과를 평가받는데, 기준 점수를 넘지 못하면 자사고로 재지정 되지 않고 일반고로 전환된다.

 각 교육청은 올해 기준 점수를 기존 60점에서 70~80점으로 상향하는 등 엄정한 평가를 예고하고 있다. 서울 한 자사고 교장은 “학교들이 모의평가 한 결과 70점이 넘는 학교는 단 한 곳도 없었다”며 “올해 서울지역에서 평가받는 학교가 13곳인데 그중 절반 이상은 탈락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일부 합헌, 일부 위헌이라는 어정쩡한 결정으로 혼란이 해소되기는커녕 재지정 평가가 더 중요해지게 됐다"며 "정권에 따라 학교 제도가 수시로 바뀔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폐지 현실화되면 입시 경쟁률도 변화

 올해 자사고 입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우선 선발권만 폐지하기 때문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우선 선발권이 폐지돼 일반고와 동시 모집을 한 지난해 서울 자사고 입학 경쟁률은 전년도와 큰 변화가 없었다. 서울 21개(하나고 제외) 자사고 일반전형 경쟁률은 1.3대 1로 전년도(1.29대 1)와 비슷했다.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자사고학부모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자사고학부모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각 교육청의 재지정 평가에 따라 폐지가 현실화할 경우에는 경쟁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재지정 결과는 6~7월에 나오기 때문에 올해 고입을 치를 중3 학부모는 혼란이 적지 않다. 중3 자녀를 둔 김모(45·서울 영등포구)씨는 “올해 자사고에 지원할 예정이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힘들게 합격했는데 금방 일반고로 바뀌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또 다른 중3 학부모는 “첫째 때도 입시가 요동치더니 둘째 때도 또 이런다”며 “고입도 대입처럼 3년 예고제를 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정부 계획대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돼도 당분간은 명문고 명맥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자사고 중에는 10년 동안 운영하면서 대입의 노하우를 축적한 곳이 많아 '명문 일반고'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윤서·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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