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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강남 9000가구 “내땅이 6년째 남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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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한 단독주택 용지에 지어진 주택.[중앙포토]

서울 강남구 세곡동의 한 단독주택 용지에 지어진 주택.[중앙포토]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개발ㆍ공급하는 서울 내 공공주택지구들이 줄줄이 소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SH공사가 땅 분양을 해놓고 소유주들에게 소유권을 넘겨주지 않아서다. 늑장 행정처리 탓이다.

SH가 분양한 내곡·세곡2지구 #“사업 다 안 끝나” 소유권 안 넘겨 #대출·매매 막혀, 다운계약하기도 #“부분 준공 않고 편의적 일처리”

분양한 지 8년째인데도 주민들이 토지 소유권을 못 가진 서울 은평 한옥마을에 이어, '강남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 손꼽히던 서초구 내곡지구와 강남구 세곡2지구도 6~7년째 같은 문제로 속앓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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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ㆍ세곡2지구는 2009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다. 원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지역이었다. 도심 가까운 곳에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한다는 정책에 따라 당시 국토해양부는 2012년까지 서울 및 수도권의 그린벨트 내에 보금자리주택 32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내곡ㆍ세곡2지구는 SH공사가 개발ㆍ공급을 맡았고 단독주택 157필지와 공동주택 9000여 가구가 들어섰다.

통상적인 부동산 거래라면 잔금까지 치르면 해당 물건의 소유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내곡ㆍ세곡2지구 주민들은 2013~2014년께 SH공사로부터 땅을 분양받아 잔금을 치르고 취ㆍ등록세를 냈으며 매년 재산세까지 납부하는데도 토지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단독주택 용지를 분양받은 주민의 경우 재산권 행사가 어렵다. 서류상 땅이 없어서 담보대출도 매매도 안 되는 상황이다.

세곡2지구에 단독주택 용지를 분양받은 김준석(가명) 씨는 “최근 개인 사정으로 서울 거주가 어려워져 용지를 처분하려고 내놨지만 토지 등기가 내 명의로 안 돼 있다 보니 사려는 사람이 없다”며 “사실상 국가가 분양한 땅이라 믿었는데 사기당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설령 거래가 이뤄진다 해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 매도자는 SH공사에 가서 토지의 명의를 변경해야 한다. 그런데 매매가가 정해져 있다. 최초 분양가로 거래해야 한다. 공공주택특별법의 전매행위 금지 규정에 따라 소유권 이전 등기가 이뤄지기 전까지 거래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2010년 서울 내곡동, 세곡동 등 보금자리주택 2차 지구의 공동주택 청약 현장. [중앙포토]

2010년 서울 내곡동, 세곡동 등 보금자리주택 2차 지구의 공동주택 청약 현장. [중앙포토]

김씨는 “2014년께 3.3㎡당 1000만원가량에 분양받았는데 6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가격에 팔아야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에 따르면 최초 분양가에 웃돈을 붙여 거래하고도 SH공사에는 분양가대로 거래한 것처럼 다운계약서를 쓰기도 한다.

SH공사는 내곡ㆍ세곡2지구의 택지공사가 끝나지 않아서 소유권 이전을 못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공사 준공이 나야 소유권을 이전하는 토지 등기 작업을 할 수 있다. SH공사 측은 “내곡지구의 경우 인근에 서울추모공원을 조성하면서 유보지로 남겨둔 새원마을 문제로 준공이 늦어졌고, 세곡2지구는 사업 추진 중에 밤고개로 확장공사가 시작돼 전체 준공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는 이런 사업 지연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내곡ㆍ세곡2지구 바로 옆에 보금자리주택지구로 강남(6592가구)ㆍ서초(3390가구)지구 사업을 추진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경우 2015년에 사업 준공을 하고 토지 소유권 이전도 모두 마친 상태다.

한 주택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업이 여러 사연으로 지연이 되어 전체 준공이 어렵다면 부분 준공을 낼 수도 있는 건데 SH공사가 자신들의 편의대로만 일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내곡지구 주민은 “단독주택의 경우 임대를 주려고 해도 토지 등기가 안 돼 있어 세입자가 전세 자금을 대출받지 못한다”며 “민원을 넣고 하소연을 해도 수년째 올해 안에 된다는 말뿐이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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