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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血) 공장 피는 노란 색이었다"…SK플라즈마 안동 '피공장’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한해 120만명 헌혈량 쓰는 공장 국내 언론 첫 르포 

 SK플라즈마 직원이 최신 자동화 크로마토그래피 설비를 이용하여 혈장으로부터 혈액제제를 정제하고 있다. 오른쪽 노란색으로 보이는 액체가 혈장이다. 보안상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엄격히 금지돼 있어 사진은 업체측으로부터 받았다. [사진 SK플라즈마]

SK플라즈마 직원이 최신 자동화 크로마토그래피 설비를 이용하여 혈장으로부터 혈액제제를 정제하고 있다. 오른쪽 노란색으로 보이는 액체가 혈장이다. 보안상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엄격히 금지돼 있어 사진은 업체측으로부터 받았다. [사진 SK플라즈마]

‘피(血) 냄새’는 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경북 안동시에 위치한 SK플라즈마 공장. 이곳은 사람의 피를 재료로 혈액 관련 약품을 만드는 이른바 ‘피 공장’이다. 공장 내부는 반도체 생산시설을 방불케 했다. 생산 설비가 있는 곳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항진, 항균 기능을 갖춘 옷을 두 겹으로 입어야 했다. 내부에 들어서자 은색으로 빛나는 에탄올 분획 설비들이 ‘웅웅’ 소리를 내며 작동 중이었다.

피 속에서 약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분리해내는 설비다. 지난해 10월 상업 가동을 시작한 이 공장을 취재한 것은 중앙일보가 처음이다. 공장은 지하1층, 지상 2층에 건축 면적은 1만7840㎡(약 5400평) 규모다.

주요 생산품은 혈액제제다. 혈액제제는 혈액 속 특정 성분이 부족한 이들을 위한 약이다. 부종, 화상 등의 치료를 돕는 '알부민'과 면역력을 높여주고 자가면역 증상을 조절해주는 '면역글로불린', 피가 잘 멎지 않는 혈우병에 걸린 이들을 위한 약 등이 대표적인 혈액제제다. 국내에선 SK플라즈마를 포함 두개 업체가 혈액제제를 생산한다.

 혈장의약품 전문기업 SK플라즈마의 최첨단 냉 에탄올 분획 설비. 피 속에서 약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분리해 내는 장치다. [사진 SK플라즈마]

혈장의약품 전문기업 SK플라즈마의 최첨단 냉 에탄올 분획 설비. 피 속에서 약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단백질을 분리해 내는 장치다. [사진 SK플라즈마]

혈액제제용 피는 노란색 '혈장' 

예상과 달리 혈액제제 제조에 쓰이는 피는 새빨간 색이 아니라 노란 색이 감돌았다. 혈액제제는 전혈(全血)이 아닌 노란색의 혈장을 주 원료로 해서다. 혈장에서 단백질을 분리한 뒤 이를 토대로 약을 만든다. 생산 과정은 얼핏 봐선 정유공장과 유사하다. 혈장 속 단백질을 층층으로 분리해 각각의 약을 만들기 때문이다.

유용재 SK플라즈마 공장장은 “공장의 생산량은 한해 60만L 가량”이라며 “이는 국내 혈액제제 시장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60만L면 혈장만 따로 뽑는 성분 채혈을 한다 해도 한해 120만명 분의 헌혈이 필요하다. 성분 채혈이란 헌혈자로부터 혈장 성분만 채혈하고 나머지 혈액은 다시 돌려주는 방식이다.

한해 60만L 혈액제재 나온다

SK플라즈마가 새로 공장을 지은 건 관련 시장이 꾸준히 커지고 있어서다. 전 세계 혈액제제 시장 규모는 20조 원 가량이다. 알부민과 면역글로불린 등 혈액제제는 과거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면역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2000년대 초 중국과 홍콩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가 확산됐을 당시 현지 혈액제제 값이 평소의 3~4배 이상 치솟았었다.

혈액제제는 수출 전망도 밝은 편이다. 중앙일보가 공장을 방문한 이날도 동남아시아와 중동 등에서 온 전문가들이 공장 내·외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유 공장장은 “생산 캐파 중 3분의 1은 내수용 제품을 생산하고 나머지 3분의 2 정도는 수출용 제품을 만드는데 할애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채혈 후 100일 지난 혈장으로 만들어 

사람의 혈장으로 제품을 만드는 만큼 핵심은 위생이다. 원재료인 혈장의 바이러스 감염여부 검사와 함께 제조 공정에서의 바이러스 불활화ㆍ제거공정을 기본으로 거친다. 이렇게 얻은 혈장은 분획ㆍ정제ㆍ충전ㆍ포장의 4가지 공정을 거쳐 혈액제제로 탄생한다.

또 각종 질병의 잠복기에 대비해 SK플라즈마는 채혈 후 100일 이상 된 혈장으로 제품을 만든다. 유럽이나 미국은 채혈 후 60일이 지난 혈액을 쓴다. 여기에 나노 필터로 한 번 더 정제한다. 나노필터는 균을 제거하는 무균여과 필터보다 10배 더 미세하다.

유 공장장은 “국내 혈액제제 제조사의 경쟁력이 글로벌 톱 플레이어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올라섰다”며 “혈액제제 제조 능력이 없는 국가를 중심으로 수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안동=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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