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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강원 산불 대응 찬사와 감사는 소방청 아니라 소방관 몫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속초까지 번졌다. 5일 오전 속초 장사동 인근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압 작업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속초까지 번졌다. 5일 오전 속초 장사동 인근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압 작업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강원도 동해안 산불을 진화하는 소방관의 헌신적인 모습이 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전국에서 강원도로 집결하는 소방차 행렬, 소방관 손바닥의 터질 듯한 커다란 물집, 잿더미에 앉아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이 연일 화제였다. 화마에 전 재산을 다 잃고 망연자실한 이재민들도 목숨 바쳐 불길을 잡은 소방관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 와중에 소방청의 대응은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소방관을 향한 찬사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해 "초기 대응이 빛났다" "신속한 판단과 대응으로 조기 진압에 성공했다"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과연 초기 대응이 빛났을까. 강원도 고성 산불은 4일 오후 7시 17분 시작됐다. 시민 제보와 통신사 등이 현장에서 전송한 사진과 영상에는 이미 오후 8시께 강풍을 타고 속초 시내까지 불길 번졌다.

소방청이 출입기자단에게 첫 알림 문자를 발송한 건 오후 9시 13분. 8시 23분에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고 전했다. 산불 발생 1시간이 넘었고 이미 속초 시내까지 불이 번진 상황이었다. 최고 수준인 대응 3단계가 발령된 시각은 오후 9시 44분. 이미 불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진 상태였다.

봄철 강원도는 대형 산불이 잦다. 2017년 1017ha를 불태운 강원도 삼척·강릉 화재도, 2005년 낙산사를 집어삼킨 양양 화재도 4,5월에 발생했다. 이번 산불은 건조한 대기에 강풍이 몰아치면서 순식간에 번졌다.

게다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오후 7시가 넘어 시작된 산불이라 초기대응이 매우 중요했다. 초기에 잡지 못하면 밤새 번질 게 뻔했다. 그런데 소방청은 오후 10시에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 소방력을 동원했다. 이런 판단이 '신속하고 적절한 초기 대응'이라 자랑할 만한지 의문이다.

7일 강원도 고성 소방서에 전달된 초등생들의 손편지. 이날 천진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 5명은 간성 119안전센터를 방문해 직접 쓴 감사의 편지를 전달했다. [고성소방서 제공]

7일 강원도 고성 소방서에 전달된 초등생들의 손편지. 이날 천진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 5명은 간성 119안전센터를 방문해 직접 쓴 감사의 편지를 전달했다. [고성소방서 제공]

실제로 이 시각 전국에서 집결한 소방관들은 이미 짙은 어둠 때문에 본격적인 진화 작업에 투입할 수 없었다. 대신 방어선을 구축하며 어둠과 불길이라는 두 가지 위험과 싸워야 했다. 소방청이 좀 더 일찍 판단하지 못해 주민과 소방관을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은 건 아닌지 뼈아프게 반성할 일이다.

소방청의 자화자찬은 5일 오전 6시 '2017년 7월 소방청 독립으로 조속한 대응이 가능했다'는 보도자료 뿌리면서 시작됐다. 현장에서는 전날 화재 현장으로 달려온 소방관들이 밤새워 방어선을 지키다 동트자마자 본격 진압에 나설 때다. 이날 오전 8시 넘어서야 고성의 주불이 잡혔다.

박수를 받아야 할 주인공은 현장에서 묵묵히 화마와 싸운 소방관이다. 소방청은 이번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겸허하게 되짚어야 한다. 그래야 혹시라도 다음에 불이 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스스로 하면 칭찬이 아니다. 칭찬은 제3자의 몫이다. 소방청 독립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는지도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낯 뜨거운 자화자찬을 멈추고 소방관의 안전을 강화하고 화재를 예방하거나 효율적으로 진화하는 방안을 찾는 게 소방청이 할 일이다.

박형수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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