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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정보 공개로 신상털기 막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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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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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것 아니냐’고 생각했던 게 어느 순간 관성이 돼 버렸다. 법원의 중요한 판단이 나올 때 판사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최근에도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영장담당 판사가 누구냐에 관심이 쏠렸다. 궁금증을 증폭시킨 건 판사가 밝힌 600자 정도의 사유 때문이었다. 박정길 부장판사는 “일괄 사직서 청구 및 표적 감사 관련 혐의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해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 됐던 사정 등을 고려해 이 부분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다른 이유도 몇 가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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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영장 기각 사유”라는 말들이 나왔다. 특히 ‘일파’라는 단어가 논쟁거리가 됐다. 일반적으로 영장담당 판사들은 기각이나 발부 사유를 간결하게 내놓는다. 혐의가 소명되는지, 도주 및 증거인멸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범죄의 중대성이나 피해자·참고인 등이 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지 등을 포함시킨다는 형사소송법에 따른 조치다. 영장실질심사는 수사하는 데 인신구속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조치일 뿐, 재판하는 절차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 부장판사의 경력, 그가 과거 재판했던 내용을 찾아봤다. 판사들 내부 평판 외에 접할 수 있는 거라곤 한 변호사가 인터뷰하면서 그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는 정도였다.

지난해 9월 유해용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유 역시 역대급이었다. 당시 허경호 부장판사는 약 3000자짜리 기각 사유서를 내놨다. 검찰의 논리를 반박하는 논리였다지만 구속영장을 절대 안 내주겠다는 ‘결심 선언’으로 읽혔다. 역시 신상이 털렸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안태근 전 검사장,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한 전력이 부각됐다.

“꼭 판사의 신상을 털어야 하나”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 독립의 원칙에 어긋나고, 심적 압박감을 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헌법적 지위를 누리며 한 개인의 운명은 물론 사회의 큰 변화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판사에 대한 정보는 더 많이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특정 연구회나 사회적 활동 내역 역시 그 판사가 판결하면서 의지할 ‘양심’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사법 신뢰를 되찾겠다는 이 시점에서 관성적 ‘신상털기’ 전에 법원이 나서서 투명한 ‘정보 공개’를 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문병주 사회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