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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50명 갇혀 있다” 무전…25㎏ 장비 메고 뛴 소방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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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5일 강원도 속초 장천마을에서 밤새 진화작업을 마친 소방대원이 이동하고 있다. 5일 청와대에 올라온 소방관 국가직 전환 관련 국민 청원은 이틀째인 7일 10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연합뉴스]

지난 5일 강원도 속초 장천마을에서 밤새 진화작업을 마친 소방대원이 이동하고 있다. 5일 청와대에 올라온 소방관 국가직 전환 관련 국민 청원은 이틀째인 7일 10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연합뉴스]

“몸이 불편한 어르신 50명이 요양원에 갇혀 있는데 곧 산불이 덮칠 것 같아요.”

요양원 내 연기 빼내 탈출로 확보 #전국 각지서 소방관 3000명 투입 #집에 갇힌 80대 치매 할머니 구출

고성소방서 소속 김진석(52) 소방위는 지난 4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에서 산불이 발생했으니 전 대원은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집결지로 가는 길이었다. 소방버스엔 20여 명의 대원이 타고 있었다. 이때 “요양원에 50명이 갇혀 있다”는 신고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요양원까지의 거리는 2㎞에 불과해 곧바로 방향을 요양원으로 돌렸다. 1㎞를 남기고 이동이 어려워졌다. 앞 차량에 불이 붙어 도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김 소방위는 9명의 대원과 함께 요양원까지 뛰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25㎏에 달하는 공기호흡기, 소방복을 입은 상태였다.

산불로 인해 코에 화상을 입은 소. [연합뉴스]

산불로 인해 코에 화상을 입은 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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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대원들은 요양원 건물 옆 창고까지 퍼진 산불을 진화하기 시작했다. 김 소방위 등은 선풍기 등을 통해 건물 안에 있는 연기를 빼내 탈출로를 확보했다.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대원들은 곧바로 휠체어 등을 활용해 노인들을 1층 입구로 옮겼다.

간호사 출신은 김순주(35·여) 소방사가 노인들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했다. 다행히 다량의 연기를 흡입하거나 다친 환자는 없었다. 출동 30여 분 만에 요양원 노인과 요양보호사 등 50여 명이 구조됐다.

강릉소방서 장충열(57) 119구조대장도 대원들과 함께 지난 4일 강릉시 옥계면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 대원들은 현장에서 치매가 있는 80대 할머니가 집 안에 갇혀 있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당 집으로 달려갔다. 주변 집들은 이미 불에 탄 상태였고, 해당 집 LP가스통에 이미 불이 붙은 상태였다. 재빨리 불을 끈 대원들은 창문을 깨고 들어가 할머니를 구했다. 장 대장과 대원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을 찾기 위해 주변 집들을 확인해 어르신 7명을 구했다.

까맣게 그을린 반려견. [뉴스1]

까맣게 그을린 반려견. [뉴스1]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산불 진화에 전국 각지의 소방차 800여 대가 동원됐고, 투입된 인원은 3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진화작업을 했다. 강릉 옥계소방서 대원들은 5일 낮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화재를 진압한 후 옥계면 남양1리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에게 섞여 쪽잠을 자기도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강원도 화재 당시 현장에서 촬영된 소방관들의 사진과 함께 특정 당과 의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글을 올렸다. 그는 화재 진압 작업 뒤 지쳐 쓰러져 있는 소방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올리며 “이분들 보고 반성 좀 합시다. 제발”이라고 쓰기도 했다.

고성·강릉=박진호·편광현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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