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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부시 뺨친 부통령 체니의 권력의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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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화 ‘바이스’의 체니 부통령(크리스찬 베일·왼쪽)과 부시 대통령(샘 록웰). [사진 콘텐츠판다]

영화 ‘바이스’의 체니 부통령(크리스찬 베일·왼쪽)과 부시 대통령(샘 록웰). [사진 콘텐츠판다]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진다. 배후는 알카에다. 미국은 유럽과 손잡고 곧바로 알카에다의 근거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다. 그리고 2년 뒤 이라크를 공격한다.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이다. 하지만 공격의 명분인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미국은 왜 국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를 공격했을까. 석유 때문일까. 또 미국 같은 나라가 어떻게 관타나모 수용소의 비인간적 고문을 묵인할 수 있었을까.

새 영화 ‘바이스’에 나타난 2인자 #크리스찬 베일 몸무게 20㎏ 불려

영화 ‘바이스’(11일 개봉)가 주목하는 건 이 시기의 권력자, 부통령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다. 통상 미국 부통령은 대단한 자리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말하듯 상징적 존재일 뿐. 하지만 그는 달랐다.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자, 영화에 따르면 은밀히 초헌법적 권력까지 추구한 인물이다.

영화는 9·11 직후 단호한 명령을 내리는 부통령과 명문대에서 퇴학당한 주정뱅이 젊은이를 번갈아 보여주며 그 삶에 다가간다. 젊은이는 여자친구 린(에이미 아담스)의 훈계에 정신을 차리고, 미국 하원 인턴으로 출발해 백악관 최연소 비서실장 등 굵직한 이력을 쌓아간다. 영화 중반이면 이미 정치에서 물러나 대기업 CEO로 여생을 즐길 분위기다.

바로 그때, 대선 출마를 앞둔 조지 W 부시(샘 록웰)가 부통령을 맡아 달라고 제안한다. 노회한 체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상대로 부통령직에 전례가 없는 권력의 발판을 얻어낸다.

소재는 묵직하되 연출기법은 발랄하고, 때로는 코믹하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은 낚시장면과 교차해, 체니가 던진 미끼를 부시가 덥석 무는 것처럼 그려진다. 취임 이후 부통령 세력이 실권을 장악한 상황은 게임판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내레이션에도 나오듯, 영화의 취지가 세상을 움직이는 큰 문제에 관심 갖자는 것이라면 그 성과는 어느 정도 뚜렷하다. 마케팅 전문가를 동원해 토지 상속세를 ‘죽음에도 세금을 낸다’는 식으로 이름 붙여 공격하는 정치, 권력을 확장할 때마다 법률 해석의 틈새를 찾아내는 정치인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권력자보다 훨씬 은밀하고 용의주도하다.

여느 전기영화와 달리 주인공에 감정이입하긴 힘들다. 영화가 딕 체니에 연민을 보이는 유일한 순간은 동성애자인 딸로 인해 대권의 꿈을 접을 때다. 이 영화의 시각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바이스(vice)는 부통령만 아니라 악(惡)을 뜻하기도 한다.

딕 체니는 석유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했을까. 영화는 석유관련 대기업 할리버튼에서 받은 대규모 퇴직금, 공직자 행동법규를 교묘히 비껴가며 업계 사람들과 만나는 모습 등을 보여줄 뿐. 그가 추구한 것은 어쩌면 권력을 위한 권력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한다. 크리스찬 베일은 체중을 20kg 가까이 불려 가며 체니를 연기했고,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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