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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누님 구하러 산불 번진 마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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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속초 일대에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5일 고성군 토성면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샌 주민들이 날이 밝자마자 전소된 집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강원일보]

고성·속초 일대에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5일 고성군 토성면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샌 주민들이 날이 밝자마자 전소된 집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강원일보]

“누님을 구하러 산불이 번지는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누나 전화받고 산불 번지기 시작한 고성으로 달려가 #불 끄던 중 시꺼먼 연기가 김씨 덮쳐 바닥으로 쓰러져

5일 강원도 속초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숨진 김모(59)씨의 형(62)이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씨는 지난 4일 오후 고성군 토성면 인근 도로에서 불을 끄던 중 쓰러졌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형이 밝힌 김씨의 그날 행적은 이렇다. 김씨는 고성에서 산불이 발생한 지 1시간 뒤쯤 누나(67)의 전화를 받았다.  집으로 데리러 와달라는 전화였다.
누나는 .차가 없고 사는 곳도 대중교통이 많은 편이 아니다.

5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에서 산불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이 소실된 건물을 보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5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에서 산불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이 소실된 건물을 보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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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시 영랑동에 사는 김씨는 곧바로 차를 운전해 누나가 사는 고성군 토성면으로 향했다. 김씨가 도착했을 땐 마을은 연기로 가득했다. 급한 대로 누나와 함께 옷가지와 귀중품을 챙겼다.

그러던 중 강풍을 타고 날아든 불씨가 집을 덮쳤다. 집에 불이 붙자 김씨는 수도를 이용해 불을 끄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시커먼 연기가 김씨를 덮쳤고, 김씨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동생이 의식을 잃자 운전면허가 없는 누나는 급한 마음에 도로를 막아 지나가는 차를 세웠다. 차량에 탄 이들의 도움으로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눈을 뜨지 못했다.

형은 “누나가 사는 마을까지 산불이 내려오면서 대피령이 내려졌는데 피할 방법이 없자 동생이 누나를 구하러 간 것”이라며 “두 남매의 아버지인 동생이 세상을 떠나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속초=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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