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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정형화 서두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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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창극이 공연되기 시작한지 1세기에 이르도록 창극에 대한 논리개발이나 그 방법에 대한 모색이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국립극장은 5일 오후3시 국립극장 소극장에서「창극의 정형화를 위한 세미나-심청가를 중심으로」를 연다.
88년의 서울올림픽 문화예술 축전을 거치면서「창극을 한국의 대표적 공연예술로 가꾸자」는 문화계 전반의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대본·음악·연출에 관한 기본 틀이나 방향은 아직까지 모호한 실정이다.
현존하는 판소리 다섯 마당을 연차적으로 창극화하고 있는 국립극장은 88년『춘향전』, 89년『심청가』에 이어『흥보가』『수궁가』『적벽가』도 모두 공연→학술모임→의견수렴 →재 공연의 과정을 통해 좀더 수준 높은 작품으로 다듬을 계획이다.
이번 세미나에서 창극 대본상의 문제에 대해 발표하는 이보형 문화재 전문위원은『창극을 세계 무대에 내놓을 만한 민족 극으로 정립시키려면 민족의 기와 운치와 조화를 담는 주제와 내용을 잡는 것이 대전제』라고 말한다.
서양식의 극한적 갈등구조보다 조화롭고 기운이 생동하는 우리 감정 리듬을 살린 구조설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말과 소릿 말은 전통적 문체로 하고, 운율은 판소리를 따르며, 대사·연기·소리·춤·곡예·놀이 등을 균형 있게 드러내 총체적 공연예술이라는 창극의 성격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창극의 음악적 측면을 중심으로 발표하는 백대웅 교수(중앙대)는 지난 5월 25∼30일 국립창극단의 69회 공연『심청가』에서 악단이 무대 아래 포장을 치고 궁색하게 쪼그려 앉아 연주토록 한 것은 근본적으로 판소리의 명창과 고수를 종속 관계로 잘못 생각하는 구 세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휘자가 무대에 등을 돌린 채 악단을 지휘한 것도 창극의 계산된 연출과 조직적인 진행 및 유연한 흐름은 지휘자의 통제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백교수는『창극단원들의 창극음악에 대한 이해부족과 타성적 태도 역시 심각한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창극이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 이긴 하지만 판소리만 잘하면 창극도 저절로 잘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큰 오해라는 것이다.
더구나 국립창극단의『심청가』공연에서는 전반적으로 청(음높이)이 불안했다면서 앞으로는 길(음계)과 청의 상관관계, 음질서와 본청의 변동, 음역과 음질서의 한계 등에 대해 조직적·체계적인 적응훈련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금까지는「보여주는 창극」에 힘써왔으나 앞으로는「들려주는 창극」에 좀더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 한결 강한 감동과 설득력을 살려야한다는 결론이다.
창극 연출의 과제와 실태를 발표하는 서연호 교수(고려대)는『우선 창극의 정립이란 연극형식의 고정화라든가 과거형의 전통 극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열린 개념으로서의 현대극을 창조한다는 예술 운동적 취지』라고 못박았다.
다른 극적 요소들이. 소리를 위해 희생되거나 소리가 극적 요소의 하나로 삽입되는 등의 방법은 독자적 창극으로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판소리의 발림을 모두 사실적 동작으로 바꾸는 대신 때에 따라 마임·춤사위·집단적 몸짓 등으로 바꾸고 서정성이 강한 소리는 가급적 그대로 살리되 서사성이 강한 소리나 아니리는 대화·설명창·해설·무대장치 등으로 적절히 바꾸는 등 기존 판소리의 구조적 해체와 해석 및 연극적 재창조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무대장치는 서사성을 살리는 선에서 최소화하고, 리얼리즘에 입각한 기교 위주의 조명이 아니라 배우의 움직임이 잘 보이게 하는 단순 조명을 쓰며, 악사가 등장할 수 있는 극중 장면에서는 악사가 배우와 동등한 자격으로 연기하면서 반주를 겸해서 서사성을 높이는 것도 효과적이라는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연극적 재창조란 기존 판소리의 각색·정리뿐 아니라 창작창극을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면서『종래와 같이 창극이 과거 지향적·퇴영적·대중 오락적·호사 취미 적인 방향으로만 치닫는 다면 스스로 밝은 미래를 포기하고 자신의 무덤을 파는 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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