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감에만 빠질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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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경원 의원과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최근 밀 입북한 임수경양 사건은 남북한 관계의 순조로운 전개에 희망을 걸었던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줬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당사자나 이들의 입북을 국내에서 도운 세력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6공시대의 개막과 함께 추진되어온 대북 평화 공존 및 화해 정책에 큰 타격을 입히고, 통일논의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분위기까지 조성하고 있다.
우선의 과제는 그 동안 북한 당국이 정상적 정부간 접촉을 기피하면서 공개·비공개적으로 남한 인사들을 평양으로 유인해간 결과를 놓고 이에 호응한 세력들의 조직과 의도,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결과한 실정법 위반 부분을 철저히 파헤쳐 응분의 법적 조치를 취하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일련의 사건을 북방 정책의 큰 테두리 안에서 평가하는 냉정한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서 의원, 임양의 입북은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줬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충격이 우리 사회에 불신을 확산시키고 기왕의 대북 정책 기조를 뒤흔드는 정도로까지의 위기상황으로 받아 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런 식으로 위기 의식이 확산되는 것은 바로 남한 인사들을 개별적으로 유인하고 있는 북의 대남 공작이 목표하고 있는 과녁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넓은 안목으로 볼 때 정부의 북방 정책이 전제로 삼아온 대부분의 요소들은 아직도 건재해 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 세계에서는 공산주의 1당 독재 체제와 이를 떠받들어 온 이념의 퇴색이 더욱 완연해지고 있다. 공산세계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교조주의를 수정함과 동시에 서방자본주의의 다원화된 정치 행태와 자본·기술을 열심히 도입하려하고 있다. 중국도 천안문 사건과 같은 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10년간 계속해온 개혁·개방노선을 고수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와같은 공산 세계 안의 변신의 필요성은 북한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다만 김일성의 권위주의에서 나오는 전체주의의 엄격한 통제 때문에 표면화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북방정책은 이와 같은 북한의 불안정한 상태에 대해 모스크바와 북경, 그리고 동구권을 통한 우회 경로로 영향력을 미쳐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정공법으로 남한 사회를 교란시켜 자신들의 혁명 전략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맞서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간은 우리편에 있다. 북방 정책의 전제가 되는 공산 세계의 변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진척될 것이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지금 단계의 진통만 잘 극복하면 더욱 굳건한 체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상태로도 우리의 체제는 몇 사람의 친북 인사의 밀입북이나 소수 급진 세력의 동조로 흔들릴 만큼 취약한 것이 아니라 믿는다.
우리는 그런 판단을 믿기 때문에 북한 당국의 분열 공작에 대해 상응하는 대응조치 이상으로 과잉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고 본다. 특히 중요한 것은 북의 공세로 우리가 지나치게 위축되고 절망적 위기감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 노력을 가속화시킴으로써 북의 동조 세력을 고립시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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