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법 부장판사 “검찰의 판사 76명 비위 통보는 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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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검찰이 대법원에 법관 76명의 비위사실을 통보한 조치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김시철(54ㆍ사법연수원 19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서울고법 판사들에게 보낸 ‘검찰의 2019. 3. 5. 통고행위의 위법성 등에 관한 법리적 검토’라는 제목의 이메일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판사는 검찰이 통보한 76명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서울고등법원 청사 전경. [사진 서울고법 홈페이지]

서울고등법원 청사 전경. [사진 서울고법 홈페이지]

앞서 검찰은 지난 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현직 법관 66명의 비위 자료 및 기소한 법관 10명의 참고 자료를 대법원에 넘겼다. 이후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업무보고에 나와 ”비위 통보 내용 등을 종합 검토해 법관들에 대한 추가 징계청구 범위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순 참고인은 통고할 법적 근거 없다”

김 판사는 이같은 사실을 언급한 뒤 “일부 언론은 검찰의 통고 후 상당한 기간이 지났지만 대법원에서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비판 보도를 했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통고행위가 정당한 것임을 전제로 하는데, 전제 자체가 법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며 글을 시작했다.

그는 “검찰이 76명의 법관 전원을 피의자로 입건하였는지 불분명하고, 나아가 검찰은 다른 법관들에 대한 수사가 종료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다”며 “그렇다면 위 76명의 법관에 관한 자료의 통고행위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위법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근거로는 ‘검사는 법관을 비롯한 국가공무원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를 개시하는 경우 소속기관에 통고해야 한다’고 규정한 국가공무원법ㆍ검찰사건사무규칙 조항을 들었다. 피의자가 아닌 단순 ‘참고인’은 소속기관에 통고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가기관이 법적 근거나 권한이 없는 영역에 관하여 행한 행정작용은 당연무효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검찰, 공무상 비밀 누설죄 적용될수도”

사법부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에 수사기록을 넘기는 게 위법이라는 주장도 폈다. 그는 “수사기관에서 아직 사실관계 등에 대한 종국적 판단을 할 단계에 이르지 못한, 내부적으로도 정리되지 않은 사실 관계를 외부기관인 대법원에 통고하는 건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의 통보 행위가 형법상 ‘공무상 비밀 누설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 판사는 검찰이 생성한 자료에 대한 신빙성에도 의문을 표했다. 그는 “검찰이 이번 수사과정에서 생성한 수사 자료는 수십만 쪽에 이르는데, 66명 수사 자료에 첨부된 것은 700여 쪽에 불과하다고 한다”며 “검찰에서 해당 법관에게 유리한 자료는 포함하지 않고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에 부합하는 듯한 자료만을 선별하여 대법원에 통고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적었다.

검찰 “위법한 자료면 법원이 받지도 않았을 것”  

검찰이 통보한 자료가 위법하므로, 이를 바탕으로 한 법관 징계 또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도 했다. 김 판사는 ”대법원 판례는 위법하게 취득된 증거자료를 토대로 하여 관련 당사자에게 불이익처분을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위법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대법원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며 글을 끝맺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 사건의 경우 법원에서 먼저 수사를 의뢰했다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수사가 일단락된 시점에서 참고 자료를 지금 보내는 건 문제가 없다. 위법한 자료라면 대법원이 애초 받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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