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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울시 신기술 인증제 도입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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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잡는 기술에 ‘박원순 인증’? … 수억원 사업 따낼 수도  

서울시가 신기술에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를 만든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이다. 이 인증을 받은 기업의 기술은 서울시 사업 시작 단계에 바로 적용될 길이 열린다. 부서 내부 심사까지 통과하면,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서울시 사업을 따내게 되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5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미세먼지에 대한 기술적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특별한 사이트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암참 회원사 중에서도 관심 있으면 주저말고 제안해 달라”면서 “나는 정치인이라기 보다 진짜 사업가”라고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오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주한미국 기업인들에게 스스로를 "정치인이 아닌 진짜 사업가"라고 소개했다.[사진 서울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오찬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주한미국 기업인들에게 스스로를 "정치인이 아닌 진짜 사업가"라고 소개했다.[사진 서울시]

박 시장이 말한 이 사이트는 서울시와 서울시 산하 서울기술연구원이 함께 이르면 다음 달 문을 열 온라인 사이트 ‘신기술 접수소’다. 기술 주제에 제한은 없다. 이 사이트에 신기술을 접수하면, 심사한 후 서울기술연구원장 명의의 인증서를 준다. 이렇게 인증 받은 기술들은 사이트에 올라 서울시 공무원들이 보게 된다. 서울시에서 사업을 추진할 때 이들 기술 중에서 골라 계약할 수 있다. 신기술로 미세먼지와 노후 인프라 등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중소기업 등의 신기술 개발과 판매를 장려한다는 취지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는 기술 아이디어를 제안 받아 포상금을 주거나 연구원과 공동 연구를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서울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이 인증을 받으면 서울시 정책에 적용될 만큼 우수성과 혁신성을 인증 받았다는 의미다. 중소기업 등이 마케팅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인증 남발, 시장 경쟁 방해” 우려

하지만 일각에선 적절치 않은 기술에 인증이 남발하는 ‘인증 과잉’이 생길 수 있고, 인증 받지 않은 기업들의 시장 경쟁을 방해해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앞서 서울시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아파트와 도로 등에 뿌린 광촉매 물질과 터널에서 실험한 플라스마 차량의 경우 문제가 제기됐다.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시민 생활에 섣부르게 적용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 7인이 발표 내용 심사, 짧으면 2개월 만에 인증     

‘서울시 인증’을 받을 수 있는 대상 기업은 국내외 모든 기업(1인 기업 포함)이다. 서울시는 인증 부여를 위한 검증을 3단계에 걸쳐 철저히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이 사이트에 기술을 서류 접수하면 즉시 서류 심사가 진행된다. 기술 제안자(기업)는 7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앞에서 기술을 소개하는 발표를 하게 된다. 심사 기준은 우수성과 혁신성 등이다. 서울기술연구원 관계자는 “각 분야의 전문가 위원 1000여 명을 확보해뒀고, 공정성을 위해 심사위원을 무작위로 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심사를 통해서는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뉜다. 바로 인증을 받거나, 반려되거나 실험을 더 하게 된다. 실험이 필요한 기술은 서울시 사업에 시범 적용될 수 있다. 연구원은 서울산업진흥원의 공공 테스트배드 지원사업비 2억원을 받을 수 있게 연결한다.

지난해 11월 플라스마 기술을 적용한 미세먼지 정화 차량이 홍지문터널로 들어가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 차량 통행 전후로 홍지문터널 안의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모습.[사진 서울시]

지난해 11월 플라스마 기술을 적용한 미세먼지 정화 차량이 홍지문터널로 들어가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 차량 통행 전후로 홍지문터널 안의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는 모습.[사진 서울시]

기술 접수부터 인증까지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년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기술연구원 관계자는 “현재 신기술과 신제품에 대한 정부 인증은 국가표준원이 통합 관리하는데, 실적이 좋은 업체들 위주로 인증이 이뤄지고,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 영세한 업체들은 꿈도 꾸지 못한다. 서울시는 이런 장벽을 낮추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연간 30~40건의 신기술이 접수될 것으로 예측한다.

“취지 좋지만, 제2의 제로페이 우려”   

전문가들은 취지는 좋지만, 실효성과 부작용을 우려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서울시 사업을 맡을 기업은 경쟁을 통해 선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서울시의 인증을 받은 기업과 바로 계약하면, 특혜 시비가 생길 수 있다. 인증을 받지 못한 기업의 입장에선 역차별, 또 다른 규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 인증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은 오히려 각종 협회와 연구원들이 남발하는 인증 제도를 통폐합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비슷한 인증 제도들이 너무 많아서 혼란만 부추기고 기술 상용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온라인 등이 발달한 현재는 신기술을 널리 알릴 방법이 많다. 좋은 기술은 시장이 먼저 반응한다. 이번 서울시의 인증제가 제2의 제로페이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좋은 기술을 한 곳에 모아 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취지는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런데 어떤 기술이 우수하다는 인증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차라리 특허청의 특허를 받았거나, 벤처 투자회사들의 투자를 받은 상품성 있는 기술을 한 데 모으는 게 더 낫다. 이런 식으로 공공기관이 인증하는 건 인위적이고, 인증이 남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술 경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인증을 할 때 심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선 정부가 전 세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우수한 환경 기술을 인증하고, 이를 온라인 등을 통해 알려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상용화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이런 기술 인증엔 큰 책임이 따른다. 심사위원 구성에 공을 들여 환경성·경제성·사회성 등 다각도로 심사 한 후 인증해야 부작용이 없고, 성공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서울기술연구원 관계자는 “기술 제안을 받을 때 투자와 사업 실적을 모두 첨부하도록 하고, 기술의 우수성과 혁신성은 물론이고, 안전성·사업성·경제성, 시정 적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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