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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운 1년 전부터 이희진 부모 노려...동생 납치 모의"

중앙일보

입력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3·수감)씨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김다운(34)이 1년 전부터 이씨 부모를 감시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휴대전화에선 생전 이씨 부부의 모습을 몰래 촬영한 영상이 잇따라 나왔다. 또 경찰수사 결과, 김다운이 이씨 동생(31)을 상대로 납치 등 추가 범행을 모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숨진 이씨 부부의 금품을 노리고 처음부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26일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이희진 부모를 살해한 피의자 김다운이 26일 오후 안양동경찰서에서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이희진 부모를 살해한 피의자 김다운이 26일 오후 안양동경찰서에서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이날 김다운에게 강도살인과 사체유기, 주거침입, 위치정보법 위반, 공무원 자격 사칭 등 5가지 혐의를 적용해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동포 박모(32·현재 도주중)씨 등 3명을 고용한 뒤 지난달 25일 오후 4시6분부터 다음날 오전 10시14분 사이 안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이씨 부부를 살해한 뒤 현금과 수표 등 5억원과 차량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씨 아버지(62)의 시신을 냉장고 안에 숨긴 뒤 평택시 내 임차 창고에, 이씨 어머니(58)의 시신은 집 안 장롱 속에 각각 유기한 혐의도 받고 있다.

막대한 돈 챙긴 뒤 수감된 이희진 집안 노려 

김다운은 1년 전부터 이씨 부모를 쫓았다. 지난해 3월 이씨 부모의 예전 집을 찾아 촬영해뒀고 이후에도 3차례나 이씨 아버지가 귀가하는 장면을 찍어놨다. 지난해 4월에는 위치추적기까지 동원했다. 비슷한 시기 이씨 주식 사기 피해자 모임 관계자에게 메일을 보내 이씨의 가족 관계 등을 확인했다. 이후 이씨 재판을 참관하기도 했다. 김다운은 범행 당일인 지난달 25일 오전 2시25분쯤에도 이씨 아버지의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 이동 경로를 감시했다.

이희진씨 부모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김모씨가 범행 전 올린 구인광고. [사진 모 구인업체 홈페이지 캡처]

이희진씨 부모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김모씨가 범행 전 올린 구인광고. [사진 모 구인업체 홈페이지 캡처]

김다운은 지난달 16일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 경호원 모집 글을 올려 중국동포들을 고용해 범행을 구체화했다. 범행 당일 안양시의 한 지하철역에서 만나 "사기 친 사람에게 돈을 받으러 가는데 옆에 있어 달라"며 함께 이씨 부부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후 경찰 수사관을 사칭해 집 안에 들어가 범행을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김다운은 2017년 12월에서 지난해 1월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요트임대사업 투자자 모집' 글을 보고 이씨 아버지가 먼저 연락하면서 알게 됐다고 했다. 이씨 아버지가 투자를 권유해 미화 1만8000달러(한화 2000만원)를 건넸는데 돌려주지 않아 범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다운은 경찰에 본인이 요트사업을 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씨 아버지와 통화한 기록이나 금융거래 내역도 없었다.
대신 김다운이 중국동포들을 만나기 전 표백제와 청테이프, 장갑, 흉기 등 범행 도구를 미리 산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김다운이 흉기와 범행현장을 치우기 위한 표백제까지 준비한 점 등으로 볼 때 이씨 부부가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의 부모라는 것을 알고 금품을 노려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이희진의 동생이 판매한 흰색 부가티 베이런 그랜드 스포츠 차량. 현재 경기 성남시의 한 중고 슈퍼카 매매업체에 전시돼있다. 남궁민 기자

지난달 25일 이희진의 동생이 판매한 흰색 부가티 베이런 그랜드 스포츠 차량. 현재 경기 성남시의 한 중고 슈퍼카 매매업체에 전시돼있다. 남궁민 기자

이씨 동생 상대로 납치 모의도

김다운이 이씨 부부에게서 강탈한 돈 가방 안에는 이씨 동생(31)이 사내이사로 있는 법인 명의의 슈퍼카 '부가티 베이런'을 15억원에 팔았다는 매매증서가 들어있었다. 이씨 동생은 매매 대금 중 10억원만 법인 계좌로 넣고 남은 5억원은 현금으로 바꿔 부모에게 전달했다.
경찰은 김다운이 이씨 부부가 작은아들에게 받은 돈을 노리고 범행을 가능성을 놓고 수사했다. 그러나 그가 이씨 동생이 차를 매매하기 전부터 범행을 준비한 점 등으로 미뤄 슈퍼카 판매대금을 노린 범행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김다운 문자

김다운 문자

그러나 김다운이 이씨 동생을 상대로 추가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나왔다. 김은 숨진 이씨 어머니(58)의 휴대전화로 어머니인 척 이씨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흥신소 여러 곳에 연락해 납치 관련 문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3일엔 이씨 동생을 실제로 만났다. 하지만 이씨 동생이 운전기사를 데리고 나오자 범행을 포기하고 밀항을 준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김다운이 납치 의뢰와 밀항 등을 위해 접촉한 흥신소 직원들을 사기와 강도예비, 위치정보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중국동포가 가져갔다?…5억원 행방

경찰은 이씨 부부의 피해 금액이 5억원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 동생은 경찰에 "현금과 수표가 더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다운은 "이씨 부부의 집에서 5억원만 가져왔고 이 중 6000만~7000만원을 중국으로 달아난 중국동포들이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중국동포들이 오히려 돈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이 범행 당일 항공권을 사 도주하는 과정에서 집주인과 몇십만원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국내에 있는 가족에게 "20만원만 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희진 부모를 살해한 피의자 김다운씨가 26일 오후 안양동경찰서에서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이희진 부모를 살해한 피의자 김다운씨가 26일 오후 안양동경찰서에서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공범 중 1명은 국내에 있는 지인에게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돈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글을 보냈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현장을 분석한 결과 김다운과 중국동포들이 피해자들을 분리·제압하는 과정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돼 공범으로 인정된다"며 "인터폴 적색수배 및 범죄인도 등 국제공조를 통해 이들이 국내로 송환되면 추가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돈 가방은 김다운의 어머니 등이 보관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돈을 김의 변호사 선임비와 빌린 돈을 갚는 등에 사용했다.
경찰은 김다운의 어머니와 이모, 의붓아버지를 장물취득 및 운반 혐의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범행 당일 김다운의 요청으로 이씨 부부의 집을 방문한 친구 지인 2명도 주거침입 혐의를 적용해 입건했다.

안양=최모란·김민욱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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