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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형님' 헝가리 독립투사 갈소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영향을 끼친 헝가리의 라요시 코슈트. 동양권에서는 '갈소사'로 불린다. [사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영향을 끼친 헝가리의 라요시 코슈트. 동양권에서는 '갈소사'로 불린다. [사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백 년 전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 독립운동의 물결이 퍼져나갈 때, 독립 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준 의외의 인물이 있다. 머나먼 헝가리에서 먼저 독립운동을 펼쳤던 라요시 코슈트(Lajos Kossuth·1802~1894)다. 한국 독립운동가들에게 그는 '선배' 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한창 독립운동이 벌어지기 한참 전인 1848년,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고 1년 반 동안 격렬한 혁명 운동을 펼쳤다. 그때 국민군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면에서 이끈 사람이 바로 코슈트다. 그는 헝가리에서 독립운동 영웅으로 불린다.

그의 명성은 세계로 뻗어 나갔고, 20세기 초 중국의 지식인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  코슈트의 일생을 다룬 전기를 펴냈다. 이 전기는 1906년 한국에서 『흉아리 애국자 갈소사전(匈牙利 愛國者 噶蘇士傳)』(이하 갈소사전)이란 이름으로 번역되기에 이른다. '흉아리'는 헝가리의 음역어이고, '갈소사(噶蘇士)'는 라요시 코슈트를 칭한다.

한국에서 발간된 '흉아리 애국자 갈소사전' [사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한국에서 발간된 '흉아리 애국자 갈소사전' [사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갈소사전은 코슈트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헝가리의 독립운동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헝가리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투철한 애국심이 절절하게 담겨있는 것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 정부에 항거하는 구체적인 투쟁방법과 민주주의적 담론들이 담겨 있다.

책은 당시 국권 상실의 절망감 속에 빠져있던 조선 민중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장두식 단국대 교양학부 교수는 "갈소사전은 코슈트와 헝가리 정치 지도자들의 국회 활약상을 보여주며 삼권 분립과 의회 민주주의 등에 대한 개념과 지식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당시 한국 독립운동가들에게 민주주의를 학습하게 하는 참고서 기능을 했다"고 설명했다.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 대사는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흉아리 애국자 갈소사전'을 지난해 10월 이화여대 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사진 주한 헝가리대사관]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 대사는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흉아리 애국자 갈소사전'을 지난해 10월 이화여대 도서관에서 찾아냈다. [사진 주한 헝가리대사관]

책의 영향력이 커지자 일본은 갈소사전을 금지 도서로 지정한다. 이후 갈소사전은 일본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는 실전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초머 모세(Csoma Mózes·41) 주한 헝가리 대사가 이화여대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아냈다. 초머 모세는 "아마도 책의 판본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던 중 책을 발견했고 매우 기뻤다"며 "이 책은 헝가리와 한국의 접점을 찾아주는 중요한 역사적인 자료"라고 설명했다.

과거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등장하는 헝가리인은 코슈트뿐만이 아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밀정'에는 파란 눈을 가진 한 남자가 폭탄 제조 전문가로 등장한다. 그가 바로 헝가리인 마자르(Magyar)다. 마자르는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 제조와 운반 등을 담당했다. 한국의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해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다.

오는 29일 경기도 용인시 단국대 국제관에서는 이처럼 한국 독립운동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헝가리인들을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린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과 헝가리대사관이 공동 주관하는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및 한국·헝가리 수년 3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다.

헝가리 독립운동 영웅 라요시 코슈트. [사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헝가리 독립운동 영웅 라요시 코슈트. [사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김문식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장은 "한국과 헝가리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주변 강대국에 국권을 빼앗겼던 쓰라린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억압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워 끝내 독립을 쟁취했다는 공통점도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장은 이어 "최근 독립운동을 다루며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다룬 발표는 많지만, 한국과 헝가리의 관계를 짚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한국의 독립운동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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