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당돌한 소설…이과여서 가능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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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호 20면

골든 에이지

골든 에이지

골든 에이지
김희선 지음
문학동네

“안 될 것도 없잖아요? 땅 밑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게 뭐 잘못인가요?” (‘지상에서 영원으로’)

“대체 그 어느 누가 저 노인에게 그럴 권리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응?” (‘골든 에이지’)

김희선의 발랄하고 당돌한 상상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왜 아니겠는가. 지구 속이 비어있어 그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말란 법 없고,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홀로그램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하겠냔 말이다. 김희선은 그런 과학적 가설들을 현실세계로 끌어들인다. 그 작업이 너무나도 능청스러워 뭐가 현실이고 뭐가 상상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작가의 말에서 김희선은 “(독자들이) 진짜로 LMFAO의 디제이 레드푸가 우리나라에서 영어 강사 노릇을 했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정말?’ 하고 관련 기사를 찾아보는 ‘뻘쭘함’을 맛봐야 했다.

김희선의 천연덕스러움은 소설 주인공이 이렇게까지 말하게 만든다.

“오직 다른 이들의 신뢰를 얻을 목적으로, 실제로 겪은 기이하고 말도 안 되는 일 대신 개연성 있고 현실적이며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가짜 경험을 들려드릴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해변의 묘지’)

그러면서도 김희선의 이야기가 들뜨지 않는 것은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도시 곳곳에서 입을 벌린 싱크홀, 해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천사 ‘쿠르디’, 온 국민의 트라우마가 돼버린 세월호처럼 현실적인 상처들이 김희선 상상력의 모태다. 어쩌면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비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 경계를 넘나들며 통증의 본질을 잘 들춰낼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상처를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약을 조제하는 것이 약사라는 직업도 갖고 있는 김희선의 글쓰기다. 천성적으로 문과(文科)인 사람으로서 그녀의 그런 이과(理科)적 상상력이 부럽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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