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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신과 보 해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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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정책 가운데 상식선에서 잘 이해하기 어려운 게 여럿 있었다. 금강 공주보(洑)와 세종보 해체 추진도 그렇다.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위원회)는 보 때문에 녹조가 발생하는 등 오염된다고 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으로 만든 이포보 등 남한강의 3개 보 주변 물에는 녹조가 생기지 않았던 반면 보가 없는 북한강에는 녹조가 발생한다. 500만 인구 충청의 젖줄인 대청호에도 해마다 녹조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대청댐도 헐어야 하나.

위원회의 “강은 흘러야 한다”는 재자연화 주장도 선뜻 수긍할 수 없다. 서울 한강에 물이 찰랑찰랑한 것은 잠실보·신곡보 등 2개 수중보의 역할이 크다. 1970년대 중반만 해도 가뭄이 들면 한강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고 한다. 보를 설치하고 강 주변을 정비했기 때문에 한강은 1000만 서울 시민의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도 템즈강에 45개의 보를 설치해 강물을 관리하고 있다.

보 해체 추진은 집권세력이 강조하는 촛불 정신에도 어긋난다. 촛불혁명에 따른 적폐청산이라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 기본 정신은 국민이 편안하게 함께 잘 사는 국가 건설이다. 국민 개개인의 의사가 존중되고 삶의 터전이 보호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보 처리 과정에서 이런 정신은 지켜지지 않았다. 강물을 이용하는 주민의 의사가 최우선 고려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시됐다. 지난해 12월 정부의 공주보 존치 여부를 묻는 조사에서 ‘필요하다 51%, 필요 없다 29%’로 나왔다. 공주보 주변 농민은 “보를 철거하면 강에 물이 없어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지금도 아우성이다.

세종 시민들도 서울 한강처럼 행정수도인 세종시 금강에 많은 물이 흐르기를 원하고 있다. 게다가 세종보는 문재인 정부와 통치철학을 같이하는 노무현 정부 때 행정도시를 만들면서 계획됐다. 강에 물을 채워 시민휴식 공간을 꾸미고, 호수공원 등 도심 곳곳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한강물이 없는 수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물이 없는 행정수도도 상상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보를 해체하지 않고도 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오염 시에 보를 열었다가 닫거나, 강으로 연결된 지천 등을 정비하는 것 등이다. 보를 철거하면 철거비용도 수백억원이 드는 데다 더 큰 문제는 물을 활용하기 어렵게 된다. 보 해체의 고집이란 전 정권 흔적이나 상징 지우기 외에는 근거를 찾기 어려울 뿐이다.

김방현 대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