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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강남·목동 높은 진학률 그 뒤엔 더 높은 재수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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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이데아 2019] 서울대 많이 보내는 학교, 재수 비율도 높다 

재수종합학원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재수생들. 이른바 '명문고' 출신의 재수생들은 대부분 '명문대' 입학을 위해 재수를 감행한다. [중앙포토]

재수종합학원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재수생들. 이른바 '명문고' 출신의 재수생들은 대부분 '명문대' 입학을 위해 재수를 감행한다. [중앙포토]

한국에서 이른바 ‘명문고’를 결정짓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기준은 대학 진학률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덜 드러나는 지표가 있다. 재수율이다.

상위 10곳 졸업생 절반이 재수 #학생들 사이 ‘4년제 고교’ 자조

중앙일보는 2018학년도 서울대 입학생을 많이 배출한 학교들의 사실상 재수 비율을 분석했다. 각급 학교 정보가 정기적으로 공시되는 ‘학교알리미’(www.schoolinfo.go.kr)에는 졸업생의 진로 현황이 공개되는데, ‘진학’과 ‘취업’을 제외한 ‘기타’인 경우다. 기타로 졸업생의 대부분이 재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나머지는 입대·특수학교·무직 정도로 소수다.

이에 따르면 2018년 서울대 입학생을 많이 배출한 상위 10개 고등학교(예술고·과학고 제외) 중 4개의 졸업생 기타 비율이 50%가 넘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휘문고는 기타 비율이 65.3%로 가장 높았다. 중동고(60.6%·강남구 일원동)·단대부고(58.6%·강남구 대치동)·강서고(56.5%·양천구 목동) 등이 뒤를 이었다. 이른바 명문고라는 학교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4년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수능서 고3에 비해 압도적 우위 보이는 재수생 

재수생들은 고3 재학생들에 비해 언어·수리·외국어 모든 과목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자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대입제도 개선 연구단]

재수생들은 고3 재학생들에 비해 언어·수리·외국어 모든 과목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자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대입제도 개선 연구단]

이런 현상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재수생들의 강세와 맞물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2017년 수능 성적분포 결과’에 따르면 수능 외국어 영역에서 재학생의 표준점수 평균이 97.6점, 재수생은 108.3점으로 10.7점이 높았다. 언어 영역 역시 재수생이 재학생보다 표준점수 평균이 10.1점 높았다.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교 간 쏠림 현상에 더해 학교 내 쏠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교 안팎의 지원이 성적 피라미드의 꼭대기인 1등급(상위 4%) 학생들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의 목표는 1등급·2등급 추려내기”

강남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사실상 학종이 입시 준비의 중심에 있고 이를 위해 내신은 반드시 9등급으로 나눠야 한다. 대학이 보기에 ‘이 학교 시험이 쉽다’고 인식하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시험을 어렵게 내 입학 전에 고3 과정까지 선행학습이 다 돼 있는 상위권 학생들을 상대로 1등급 4%, 2등급 11%를 추려내는 게 평가의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시험이 쉬워 만점자가 8%가 넘을 경우 전원 2등급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시험을 어렵게 내서 만점자 수를 줄여야 최상위권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1등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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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라고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다. 강남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은 양천구 고교생 3명은 인터뷰를 통해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너무 잘하는 애들이 뭉쳐 있으니까 학교는 포커스를 거기 맞춰서 시험을 아주 어렵게 내요. 학원을 안 다니고는 버틸 수가 없죠. 이렇게 시험이 어려우니 상위권 애들 말고는 내신을 아예 놔버리는 경우가 많아요.”(3학년 A군) 

“생기부(학교생활기록부)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중에 사회 과목에서 좀 부족한 게 있어 보여서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봤는데, 저도 그렇고 친구들 중에서도 내신이 1등급이거나 수행평가가 만점인 아이들 외에는 아예 써주지를 않더라고요. ‘너넨 조금 떨어지는 애들이니까’라는 건데, 현실적으로는 또 납득을 할 수밖에 없죠.”(2학년 B군) 

“학교 내 관행인 것 같아요. 내신 2등급 이상이 아니면 세특은 안 써준다는 말도 있어요. 선생님에게 여쭤봤더니 아니라고 하셔서 그 말씀을 믿긴 하지만, 주변에는 본인이 직접 세특을 써서 가져가는 친구들이 진짜 많아요.”(2학년 C군)

‘성적 피라미드’ 축소판 된 교실 현장 

학교 차원에서 상위권 학생들을 저학년 때부터 집중 관리한다는 얘기다. 서울 비강남권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한 교사도 “1학년 첫 시험에서 상위권에 들어간 20~30명 정도에 대해서는 지도교사가 따로 붙는다. 주로 학생마다 특성에 따라 생활기록부에 쓰기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전했다.

대다수 청소년이 사회에 나가기도 전 이미 교실에서 ‘한 줄 세우기’의 피해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전상용 전 동덕여고 교장은 “학교에선 지·덕·체를 모두 겸한 종합적 교육에 이뤄져야 하는데, 점수에 대한 맹신 때문에 지금의 교실에는 인간은 없고 성적만 남았다”며 “같은 학교에 다니는 데도 좋은 대학을 포기한 아이들은 명문대 진학을 준비하는 애들을 위해 희생타만 치면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소외된 아이들에 더 집중해 다양한 진로 적성을 찾도록 하는 게 교육인데, 지금은 학교가 본분을 잊었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유지혜·정진우·하준호 기자 wisepen@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교실이데아 2019] 학부모 선호도 높은 초등학교, 서울대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를 인포그래픽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3409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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