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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Why] 경기 둔화 얼마나 심하길래…유럽중앙은행, 통화정책 U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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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AP=연합뉴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AP=연합뉴스]

올해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울 것이라는 예보는 지난해 말부터 나왔다. 세계은행ㆍ국제통화기금(IMF)ㆍ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구와 골드만삭스ㆍ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2019년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ECB 7일 통화정책 회의서 #연내 금리인상 계획 철회 #값싼 대출 프로그램 신설 #독일·이탈리아 성장 둔화 #유로존 곳곳 경기 침체 신호 #美, 올들어 완화적 통화정책 #中, 대규모 경기부양책 발표 #1년새 긴축에서 완화로 U턴

올해 들어 이 같은 예측대로 들어맞는 듯한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다시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이 가장 먼저 정책 변경을 공식화했다.

ECB는 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연내 금리 인상 계획을 철회하고 유로존 시중 은행들에 값싼 금리로 대출해 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말 양적완화(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돈을 푸는 것으로 통화정책 방향을 바꾼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가 대출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함으로써 주요국 중앙은행 중에서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응해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돌아선 첫 사례가 됐다고 전했다.

ECB는 기준금리를 현행대로 ‘제로(0%)’로 동결하고 적어도 올해 말까지 이를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ECB는 올해 3분기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EPA=연합뉴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EPA=연합뉴스]

ECB는 시중은행을 지원하는 새로운 장기대출 프로그램을 오는 9월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TLTRO로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ECB가 유로존 시중은행에 마이너스 금리로 자금을 빌려줘 은행이 민간 부문 대출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경기 부양책이다.

앞서 두 차례 TLTRO 프로그램이 시행된 적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1차(2014~2016년), 2차(2016~2017년)로 실시됐다.

ECB가 공식적으로 통화정책을 U턴한 배경에는 유로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경기 침체가 생각보다 길고 깊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해 ECB는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을 1.1%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전망치 1.7%에서 3개월 만에 대폭 낮췄다.

올해 세계 경제는 미ㆍ중 무역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 특히 유로존 경기 전망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난해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로존 경제 대국의 성장이 급격히 둔화하기 시작했다. 독일 경제성장률은 2017년 2.2%에서 지난해 1.5%로 떨어졌다. 5년 만에 가장 낮았다. 이탈리아는 경기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OECD는 지난 6일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유로존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1.0%로 대폭 낮췄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전망치 1.8%에서 0.8%포인트 끌어내렸다. 독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당초 1.6%에서 0.7%로 조정됐고, 이탈리아 성장률은 0.9%에서 -0.2%로 바뀌었다.

유럽중앙은행(ECB)가 유로존 시중은행에 빌려준 약 7000억 유로 규모의 대출 만기가 곧 돌아온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000억 유로 가까운 대출 만기가 2020년 6월이다. [블룸버그 캡처]

유럽중앙은행(ECB)가 유로존 시중은행에 빌려준 약 7000억 유로 규모의 대출 만기가 곧 돌아온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000억 유로 가까운 대출 만기가 2020년 6월이다. [블룸버그 캡처]

ECB가 경기 부양에 나선 직접적인 이유는 앞서 진행한 TLTRO 대출 만기가 곧 돌아오기 때문이다. 2016년 시작된 2차 TLTRO 프로그램을 통해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 지원한 자금 가운데 7000억 유로(약 893조원)의 대출 만기가 올 하반기부터 돌아온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000억 유로에 가까운 대출은 2020년 6월 한꺼번에 만료된다. 현재로썬 이를 갚을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은행의 신용 경색과 경기 위축을 피하기 위해 긴급히 3차 TLTRO 카드를 꺼낸 것이다.

ECB가 통화정책 U턴의 맨 앞에 섰지만, 미국·중국과 신흥국 정부도 올해 들어 완화적인 통화 정책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해 4차례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에 박차를 가하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올해 들어서는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고 있다.

지난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2.25∼2.50%에 동결했으며, 오는 21일 열리는 FOMC에서도 동결이 예상된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을 비롯한 위원들은 연일 통화정책에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만간 보유자산 축소도 종료하겠다고 예고했다.

금리 동결은 다른 선진국과 신흥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이후로 캐나다, 호주,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헝가리, 폴란드, 터키 중앙은행이 줄줄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불과 1년 전 경기 회복세 속에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기에 바빴으나 올해는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푼 돈을 다시 거둬들이며 통화정책 정상화를 꾀하려 했으나 곳곳에서 침체 신호가 나오자 다시 돈줄을 푸는 선택을 하고 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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