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성수의화학이야기

현대판 불로초를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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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누구나 젊음을 유지하며 무병장수를 꿈꾼다. 노화 극복과 생명 연장을 위한 노력의 역사는 기원전 3500년까지 올라간다. 묘약(elixir)을 찾아 알렉산더 대왕이 영원한 젊음을 주는 전설의 샘을, 진시황은 불로초를 갈구하였다. 우주 모든 생명체에는 정해진 수명이 있다. 척추동물의 한계수명은 성장에 필요한 기간의 약 여섯 배다. 따라서 인간의 성장기를 25년으로 볼 때 150살이 이상적 수명이다. 지난 60년 동안 평균 수명이 30세나 늘어났다. 위생환경과 영양의 개선도 있었지만 의약품의 대량 보급에 의한 질병 치료가 주요인이다.

노화의 원인으로 인명재천설과 후천적 세포손상설이 있다. 인명재천설은 세포 속에 유전적으로 죽음의 시기를 결정하는 '수명시계'가 있다는 설이다. 장수의 상징인 거북은 90~125회, 닭은 15회, 인간은 60회 정도 세포분열이 끝나면 노화가 나타나도록 미리 프로그램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 과학자들이 수명시계의 기능을 조절하는 물질을 최근 발표했다. 실제 사용하려면 임상에서의 약효와 안전성 검증이 더 필요하다. 후천적 세포손상설의 주범으로는 '활성산소'가 꼽힌다. 마시는 산소의 일부가 활성산소로 바뀌고 체내에 쌓여 노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를 줄이는 항산화제로 비타민 C, E 등이 있다. 그러나 효과가 낮거나 투여량을 높였을 경우 요로결석의 부작용이 드물게 나타난다. 일본에서 건강기능식품 분야 매출 1위에 오른 고큐텐 역시 활성산소를 제거한다. 멜라토닌이나 성장호르몬.DHEA 등 호르몬요법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골디 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은 주기적으로 성장호르몬을 먹어 젊음을 유지했다고 한다. 호르몬 투여로 약해지던 일부 육체적.생리적 속성들이 단기간 내에 호전되기도 한다. 문제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폐경기 여성들의 젊음 유지법으로 활용해온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호르몬 요법이 유방암.뇌졸중.심장발작 등의 발병 가능성을 최대 40%가량 높인다고 보고했다.

최근 일리노이대의 올젠스키 교수 등 저명한 노화연구가 51명은 비효용성과 부작용을 우려하며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젊음의 샘은 없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현재로선 부작용을 염려하지 않으면서 젊음을 유지할 명쾌한 방법은 없다.

대안으로 전문가들은 '열량제한법'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화는 산화작용에 의해 생명의 기초단위인 DNA.단백질.세포에 손상이 누적되어 각종 외부 자극에 취약하게 된 상태이다. 따라서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선 몸속의 산화과정을 억제해야 한다.

음식물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얻는 것이 산화의 주된 과정이므로 노화를 억제하려면 덜 먹으면 된다. 15년간의 원숭이 실험결과 열량을 30% 적게 투여한 군에서 암.심장병 등 성인병과 사망률이 반으로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다. 결국 노화를 막으려면 일단 배고픔을 참아야 한다. 최대의 효과를 위해서는 열량섭취를 하루 2500㎈에서 1750㎈로 줄여야 하는데 이런 가혹한 섭생법을 고수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같은 양을 먹되 열량제한과 같은 생리적 효과를 내는 방법이 있을까. 포도당의 구조를 변형해 만든 열량제한 모방약을 들 수 있다. 충분한 음식을 섭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세포 내 포도당 대사를 저해해 안 먹은 척 세포를 속이는 역할을 한다. 생쥐에서 수명연장 효과를 보였으나 과량 투여 시 부작용을 나타내 안전성의 보강이 필요하다.

노화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다. 이를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는 약의 개발은 모든 연구자의 꿈이다. 시중에서 유통 중인 제품들은 건강보조식품일 뿐이다. 수명시계를 조절하든, 활성산소를 억제하든, 열량제한을 모방하든, 이상적 노화방지제를 개발해 인류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김성수 한국화학연구원 생명화학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