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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총제 폐지가 또다른 규제 낳으면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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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1987년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이래 수많은 개정과 제도 폐지 및 부활을 거치면서 이른바 누더기 규제가 됐다. 그 과정에서 이 제도의 목적은 재무구조 개선에서 소유 분산으로, 업종 전문화로, 소유지배구조 개선으로 계속 변질돼 왔다. 또한 획일적인 출자규제가 가져오는 폐해를 막기 위해 예외 조항이 하나 둘씩 늘어나더니 최근에는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 출자가 출자총액의 60%를 상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출총제의 폐지와 그 대안의 모색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통령 주재 관계장관회의에서 출총제의 대안으로 사업지주회사 의제, 순환출자 규제, 일본식 업종수 제한을 제시하고, 이와 병행해 이중대표소송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7월부터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시장경제선진화 TF'를 발족시켜 올해 말까지 대기업집단 시책 개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정위가 고려 중인 각 대안의 윤곽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사업지주회사 의제는 출총제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지주회사 제도의 보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자산총액이 1000억원 이상이고 타 회사 지배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즉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회사)는 지주회사로 정의돼 출총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세법상의 과세이연 및 배당소득에 대한 익금불산입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타 회사를 지배하면서 자체사업도 대규모로 수행하는 대기업은 지주회사가 되고 싶어도 전술한 '주된 사업'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해당 그룹이 원한다면 그 회사를 사업지주회사로 인정해주는 것이 바로 '사업지주회사 의제'이다. 공정위는 결국 이를 통해 대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보다 쉽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단 지주회사가 되면 현행법에 따라 일정기간 내에 부채비율, 자회사 지분율, 타 회사 주식 처분 등의 매우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따라서 지주회사 전환만 쉽게 해주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이 될지 의문이다. 또한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적극 유도하는 경우 기존의 계열사 간 출자로 인한 폐해는 없앨 수 있겠지만 이와 동시에 계열사 간 출자에 따른 우리나라 재벌의 강점 역시 제거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대안은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출총제를 통해 셋 이상의 계열사 간 환상형 순환출자를 간접적으로만 규제해 왔으나 이제 이를 직접 규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명확하지 않다. 우선 순환출자가 발생하는 이유가 다양하다. 일부에서 비판하듯이 순환출자는 총수 일가의 재산증식과 지배권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합병과정에서도 발생하고, 총수 일가 재산의 사회 환원 과정에서도 발생하며, 기업을 상장하면서 주식분산 요건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심지어 상호출자금지 또는 소유분산정책 등에 순응하는 과정에서 순환출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순환출자를 규제할 경우 초래될 위험에 대해서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부 그룹에서는 순환출자의 단기적인 해소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순환출자 규제를 강행하거나 순환출자가 해소될 때까지 의결권을 제한한다면 해당그룹은 그룹 해체나 적대적 인수합병(M&A)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순환출자의 해소가 가능한 경우에 있어서도 미래지향적 투자에 쓰이는 것이 마땅한 거대자금이 순환출자 해소에 투입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이 자칫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출총제의 세 번째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은 일본식의 업종수 제한이다. 이는 일본이 2002년 우리나라의 출총제에 해당하는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면서 도입한 것이다. 이 새로운 규제는 사업지배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기업집단의 설립 및 전환을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를 금지하고 있다.

첫째는 대규모기업집단(자산 15조엔 초과)이 5개 이상의 사업 분야에서 자산 3000억엔을 넘는 회사를 가지는 경우고, 둘째는 대규모금융회사(자산 15조엔 초과)가 자산 3000억엔을 넘는 비금융 회사를 가지는 경우이며, 셋째는 5개 이상의 상호 관련성이 있는 사업 분야(분야별 매출액 6000억엔 초과)에서 시장점유율이 10% 이상인 회사를 소유하는 경우다.

이와 같은 일본식의 업종수 제한은 그 규제기준 설정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규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우며, 규제기준의 경계에 이르러서는 불가피하게 효율성과 충돌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에 이와 유사한 '업종 전문화 시책'을 실시한 바 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인위적인 업종 제한이 자원 배분의 왜곡과 기업의 역동성 저하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중대표소송 제도에 관해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는 '주주대표소송 제도'를 채택해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중대표소송 제도는 모회사의 주주도 자회사를 대신해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9월 대법원이 원고부적격을 이유로 이중대표소송을 부인한 바 있는데, 공정위와 법무부는 상법 개정을 통해 이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주의 권리를 중시하는 영미 국가에서조차 이 제도가 보편화돼 있지 않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주된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대표소송의 원고는 해당회사의 주주이어야 하며 모회사의 주주는 원고부적격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체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자회사의 주주인 모회사 또는 그 경영진이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경우 모회사의 주주는 모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므로 굳이 이중대표소송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이중대표소송의 입법화를 시도했으나 이 같은 이유로 무산됐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하에 수많은 규제를 양산했다. 규제의 오버슈팅이 심각히 우려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도의 작동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규제의 도입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규제의 신설이 아니라 제도의 정비다. 이미 누더기가 되어 규제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출총제는 조건 없이 폐지하고,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직접 규제는 시장규율로 대체하는 한편 서둘러 도입된 기업 내.외부의 견제시스템이 우리 실정에 맞게 잘 작동되도록 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최충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