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재 조치 중국에 안 먹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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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 정부가 외견상 중국과의 공식적인 외교 관계 단절 바로 직전의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북경 당국의 민주 세력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강화됨으로써 「부시」행정부가 점점 더 어려운 곤경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 당국이 민주화를 요구한 시위자들을 탄압하는데 대한 항의표시로 ▲미 관리와 중국 정부와의 고위 회담 중지 ▲중국에 대한 국제 금융 기구의 신규 여신 저지 노력 등 두 가지 조치를 20일 발표했다.
이미 미국 정부는 천안문 시위에 대한 중국의 무력 진압과 관련해 군사 판매 중지, 양국군간 교류 정지, 재미 중국 국민의 비자 연장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한 바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중국 측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견해가 드물었다. 다소 상징적인 조치였던 셈이다.
이와 달리 이번에「부시」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진 새로운 조치는 비로소 구체적인 행동이 취해진 것이며 아울러 경제적인 조치가 처음으로 가해졌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제재로 당장 「로버트·모스배처」상무장관의 내달 10일 방중 계획이 취소됐다. 관계가 호전되지 않는 한 11월로 잡힌 「니컬러스·브래디」재무장관의 방문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미 정부는 중지 대상의 「고위 당국자」회담을 차관보 이상으로 결정함으로써 그 동안 양국간에 유지돼온 정기적인 차관보 교류도 없다는 얘기다.
대중 국제 여신 규제를 위해 미국은 세계 은행을 비롯한 국제 금융 기구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다짐하고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를 조롱하 듯 상해 군중이 보는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시위 관련자 3명을 총살함으로써 미 제재의 무력과 한계를 부각시켰다.
중국은 미국의 1차 제재 후에도 벌써 외국인 기자 추방, 비자 통제, 미국 정부 및 「미국의 소리 방송(VOA)비방, 시위자 체포 등의 행동을 통해 워싱턴 당국의 체면을 유린해왔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한동안 중국 당국에 대해 당장의 본격적인 제재 조치보다는 관망 입장쪽이었다. 중국과의 관계가 동 아시아 및 태평양지역의 전략, 특히 대소전략에 있어 매우 중요한 만큼 이 관계가 저해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경 유혈 진압과 관련한 일반과 의회의 대중 제재 압력 역시 「부시」로서는 무시 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2차 제재를 포함한 「부시」행정부의 지금까지의 조치는 미중 관계에 대한 고려와 의회 압력 사이의 줄타기로 풀이되고있다.
북경당국의 탄압 조치가 계속될수록 「부시」의 줄타기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일단 현재로서는 대중국 곡물 판매 금지 등 또 다른 추가 제재는 없다는게 미 정부 입장이다. 중국 민주화의 시련이 「부시」행정부에 외교적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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