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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세먼지 주범’ 부산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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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황선윤
황선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황선윤 부산총국장

황선윤 부산총국장

탁 트인 바다와 아름다운 항만이 일품인 부산. 요즘처럼 대기 정체가 있는 날이면 부산 하늘은 온통 희뿌옇다. 초미세먼지(PM2.5)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부산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연평균 23㎍/㎥로 7대 도시 중에서는 서울·울산과 같고, 최고인 광주(24㎍/㎥)보다 조금 낮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치(10㎍/㎥)보다는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부산의 초미세먼지는 부산항을 드나드는 연간 10만척의 선박이 주원인이다. 벙커C유 등 선박 연료의 연소과정에서 나오는 황·질소 산화물 등 대기 오염 물질이 초미세먼지 농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2014년 국립환경과학원은 부산 초미세먼지의 46.1%가 선박·항만에서 배출된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크루즈선 1척이 경유차 350만대분의 황산화물을 배출하고, 컨테이너선 1척이 트럭 50만대분의 초미세먼지를 배출한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국제 무역항인 부산항의 오염이 심해지자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2016년 부산항을 중국의 7개 항만, 두바이, 싱가포르와 함께 ‘10대 초미세먼지 오염 항만’으로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수도권 미세먼지 대책에 치중하면서 선박·항만 대책에는 소홀했다. 국내에서 선박 연료의 규제를 강화하면 선박·항만업계 비용이 증가하고 물동량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더 컸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부터 국제 항해 선박은 황 함량이 0.5% 이하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과는 동떨어진 분위기다.

국내에서도 선박 연료의 황 함유량을 현 3.5%에서 0.5% 이하로 낮춰야 한다. 경유를 사용하는 부산항 야드 트랙터와 하역 장비 등의 연료는 LNG(액화천연가스)로 바꿔야 한다. 부두 접안 선박이 기관을 끄지 않고 자가발전을 하느라 배출하는 초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육상 전력공급 설비도 갖춰야 한다. 항만 관리에 책임이 있는 정부가 관련법을 마련하고 당장 연료를 바꿔야 할 선박에 ‘유가 보전’ 같은 국비 지원책을 제시해야 한다.

지난해 8월 항만 오염을 줄이기 위한 ‘항만 등 대기질 개선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국회와 정부·부산시가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초미세먼지가 1급 발암물질인 점을 고려하면 부산시민의 건강은 지금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부산시민의 건강을 챙기고 연료규제에도 부산항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법 제정이 시급하다.

황선윤 부산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