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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독립유공자 후손 39명 국적 취득…“할아버지 항상 한국 그리워해”

중앙일보

입력

“오늘은 내 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날입니다. 내 할아버지(최재형 선생)께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대한민국이 조국의 침입자로부터 해방되는 것과 러시아 거주 동포들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재형·허위 등 독립운동가 후손 39명 #한국어 서툴러도 애국가는 따라불러 #태극기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

27일 오전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 참석한 최발렌틴(81) 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 정진호 기자.

27일 오전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 참석한 최발렌틴(81) 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 정진호 기자.

독립운동가인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손자인 최발렌틴(81) 러시아 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에게 대한민국 국적이 수여됐다. 최재형 선생은 1920년 일본군에 체포돼 총살되기 전까지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그는 올해로 100주년이 된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총장을 지냈으며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사용한 체코제 권총을 건네주기도 했다.

법무부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27일 오전 10시 30분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독립유공자 19명의 후손 39명에 대한민국 국적 증서 수여식을 열었다. 러시아 동포 18명, 중국 13명, 우즈베키스탄 3명, 카자흐스탄 2명, 쿠바 1명 등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국민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독립유공자 후손 국적증서 수여식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국민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오랜 시간 해외에서 지냈던 만큼 수여식장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어나 중국어로 대화했다. 그러나 식을 시작하면서 애국가 반주가 나오자 다 같이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 1절을 한국어로 또박또박 따라 불렀다.

중국 만주 일대에서 조선혁명군 부관으로 활약한 이여송(미상~1936) 선생의 손자인 이천민(64)씨는 이날 행사에서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박상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받은 태극기를 크게 흔들었다. 이를 지켜본 독립유공자 후손들도 손에 들고 있던 태극기를 따라 흔들었다.

이씨는 그의 할아버지인 이여송 선생을 직접 본 적이 없다. 이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군과 전투 중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버지는 물론 동네 사람들 모두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치신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살아가라고 수없이 말하곤 했다”며 “3.1운동 10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할아버지의 조국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에 있는 조선족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 교육 교사로 활동하다 정년을 채우고 최근 퇴직했다.

이천민(64)씨가 독립유공자 후손 대표로 박상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전달받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뉴스1]

이천민(64)씨가 독립유공자 후손 대표로 박상기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전달받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뉴스1]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후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간 강상진(1897~1973) 선생의 손자인 강이고르(56)씨는 할아버지와 지냈던 때를 기억한다. 10살까지 강상진 선생과 함께 살았다는 강씨는 “할아버지는 항상 '한국이 나의 조국'이라고 말하며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며 "그러나 그 당시 할아버지는 러시아를 떠날 수도 없었고 집안이 가난해 계속 일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항일 의병을 조직한 허위(1854∼1908) 선생의 후손이자 카자흐스탄 국적을 지닌 정안젤리나(27)씨도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받았다. 허위 선생은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대를 조직해 항일 무장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전국의 의병장들과 함께 13도 연합의병부대를 꾸려 일본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으나 일제에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1908년 9월 27일 순국한 그는 '서대문형무소 사형수 1호'로 기록돼있다.

국적법에 따라 아버지나 할아버지 등이 독립 유공으로 정부의 훈장 등을 받았다면 후손이 특별귀화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법무부는 2006년부터 매년 강제이주 등으로 타국에서 살아온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아 국적증서를 수여해왔다. 현재까지 1118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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