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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이 주류…개념정립 숙제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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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설보다 더 드러매틱하게 전개됐던 80년대가 마감을 반년 남짓 앞두고 있다. 한 시대, 혹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 풍경을 구체적·총체적으로 담아내는 양식인 소설은 흔히 소설적 상상력보다 앞서갔다고들 말하는 80년대를 어떻게 반영·해석·투사하고 있는가.
최근 간행된 『문예중앙』여름호는「80년대 소설의 본질과 한계」라는 특집을 마련, 80년대 소설의 경향과 성과를 짚어봤다.
이 특집은 몇몇 작품에 국한시킨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나 80년대 생산된 전 작품을 토대로 비판적 리얼리즘·진보적 리얼리즘·순수·전위 소설등 4개 부분으로 나둬 총체적으로 성과를 검토하고 있어 주목된다.
문학평론가 한기씨는 소시민적 삶을 다루는 사실주의 소설들을 「소시민적 리얼리즘」이라 불렀다.
소시민적 리얼리즘은 일상적 삶 속에 매몰돼 있는 타락한 현실의 요인들을 비판, 일상적 삶을 구원하고자하는 면에서 비판적 리얼리즘에 준하고 인간의 해방을 꿈꾸나 보편성과 근대적 이성에 입각해 있다는 점에서 혁명적 리얼리즘과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소시민적 리얼리즘의 개념 및 테두리를 이와같이 설정한 한씨는 다시 주제별로 분류, 분단·자의식·산업사회·자전적 소설등을 이 범주에 포함시켰다. 80년대 생산된 대표적 분단소설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금원일의『불의 제전』, 이교열의『영웅시대』, 김성동의 『풍적』, 이창동의 『소지』, 양선규의『난세일기』,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을 꼽았다.
한편 소시민적 삶의 자세를 반성하고 일깨우는 자의식 소설로는 김원우의『짐승의 시간』, 산업사회의 메커니즘이 눈에 띄도록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는 도시와 시골의 경계지점을 포착해낸 소설로는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박영한의 『왕릉일가』를 들었다.
또 산업사회의 갈등구조를 총체적·객관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중간층의 현실을 그린 소설로는 김향숙의『수레바퀴 속에서』, 유순하의 『내가 그린 내얼굴 하나』를 꼽았으며 소시민 작가들의 자기 진술인 자전적 소설로는 김원의 『마당깊은 집』, 이호철의 『문』, 김주영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점거일의『높은땅 낮은이야기』, 현기영의 『겨우살이』, 박영한의『지상의 방한칸』등을 들었다.
문학평론가 김재용씨는 80년대 후반들어 노동자계급의 전망위에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일련의 작품들이 생산됐다며 이를 다시 직업적 전문작가와 노동자출신작가 작품으로 분류해 살펴봤다.
소시민 계급이면서도 노동자계급의 세계관을 받아들인 민중작가의 작품으로 김씨는 윤정모의 『빛』, 김인숙의 『79-80』, 김남일의『일어서는 땅』, 홍희담의『깃발』, 정도상의 『새벽기차』등을 들고 있다.
한편 80년대 후반들어 대중적 문예활동의 성장결과로 노동자 출신 작가들이 대거 진출했는데 그들의 대표작으로는 정화진의 『쇳물처럼』, 방현석의『내딛는 첫발은』, 김한수의 『그리고 하늘이 보였다』등을 들었다.
김씨는 80년대 후반들어 나타난 이같은 소시민적 세계관으로부터 노동자 계급의 세계관으로, 비판적 사실주의로부터 진보적 사실주의로의 전이를 80년대 소설이 거둔 하나의 성과로평가했다.
문학평론가 박덕규씨는 욕망·억압구조속에서 나름의 미학적 공간을 창출한 소설에 주목했다. 이러한 80년대 순수소설의 성과로 박씨는 이승우의 『화』, 이동하의 『장난감도시 』, 이제하의 『용』, 문형열의 『앞강, 뒷강』, 오정희의『전갈』, 윤후명의 『원숭이는 없다』등을 꼽았다.
박씨는 어떤 각박한 시대에도 시대를 초월하는 인성이 있으며 그 인성이 언제나 정직하게 자리해줄때 고독하지만 인간과 문학을 지켜나가는 마지막 불빛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에 순수문학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남진우씨는 80년대 우리 소설의 주류로 자리잡은 리얼리즘의 절대성 및 전형성에 회의하면서 기존의 소설양식을 전복·파괴·해체한 전위소설에 주목했다. 80년대 전위소설의 성과로 남씨는 서정인의 『달궁』, 이인성의『한없이 낮은 숨결』등과 최수철·박인홍·강정일·김수경씨등의 작품을 들었다.
이같이 80년대 소설을 살퍼볼 때 광주민주화항쟁등 정치적 사태로 인한 소설가들의 소설을 쓰려는 의욕 상실은 80년대 후반들어서야 복원됐고 그 주류는 리얼리즘소설이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분단후 비판적 리얼리즘이라는 명칭만 존재하던 우리 문단에 소시민적 리얼리즘, 혁명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 환상적 리얼리즘등 평자의 편의에 따라 리얼리즘이란 용어가 남발됨으로써 리얼리즘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과제로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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