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공포의 밤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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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국 큰 도시의 어느 곳은 위험하니까 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우리는 흔히 들었다. 그것은 남의 얘기였고 우리는 치안이 잘 돼있어 얼마 전까지도 외국 관광객들이 마음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어느 특정한 거리가 아니고 서울·지방 할 것 없이 모든 곳이 공포의 거리다. 며칠사이에 일어난 사건만 보아도 그렇다.
가장 심한 피해는 부녀자와 어린이들이다. 20일 새벽2시 안양에서는 여고 3년생이 독서실에서 밤공부를 마치고 봉고 차로 귀가하다가 청년 6명에게 강제 납치되어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같은 날 새벽4시 서울에선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디스코클럽 여종업원이 인신매매단으로 추정되는 청년 5명에게 납치된 후 아직 행방을 모르고 있다.
이런 일련의 강력 사건들은 며칠전의 여러 어린이 성폭행 사건들과 함께 문명사회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들이다. 이 같은 사건은 어제오늘의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제6공화정 들어 이런 사건은 계속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고 대처하는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시민이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겠는가.
여자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밤늦은 귀가시간을 기다렸다가 마중 나가 데려와야 한다. 경찰과 방범대가 엄연히 제도화돼있는 법치국가에서 이 얼마나 우습고 부끄러운 일인가. 정부는 국민이 세금을 내고 공권력을 정부에 위임한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사회는 강력범 방지를 위한 비상한 결단을 내려야할 때다. 우리 모두가 긴장하고 협력해 인신을 모욕하고 사회를 불안케 하는 범죄를 응징해야 한다.
우선 정부가 강력한 치안대책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 분야별로 전문 수사관을 확보해 특별수사반을 조직해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
과거 우리는 마약·밀수·도박·강력사건 등 범죄 성격에 따른 특별단속반을 운영하여 실효를 거둔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우선 강력범 대책 반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검찰이 민생 침해사범을 집중 단속키 위해 수사요원을 2천명으로 늘려 고소·고발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수사키로 한 방침은 바람직한 일이다.
경찰이 이 같은 검찰조치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나 민생사범은 관계당국간의 관할권 논란에 앞서 퇴치돼야 할 급하고 심각한 일이다.
다음은 시민 모두가 범죄의 예방과 단속에 적극적인 자세를 지니는 일이다. 최근의 몇몇 강력 사건은 지하철 입구나 도심지 거리등 다중이 지켜보는 곳에서 저질러졌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를 거의 방관하고있었다. 이런 것은 범죄 못지 않게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문명사회·법치국가를 살아가는 문화국민이라는 긍지와 함께 시민적 사명감을 지녀야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공동체는 그 구성원 모두가 아끼고 지켜나갈 때에만 안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는 것을 새삼 명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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