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거주 유족에 소유권 우선"|북의 부인은 중혼…법적보호 밖 박태원 소설 저작권 시비 가려진 셈|서울지법 납·월북작가 저작권 분쟁에 첫 판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논란을 빚어왔던 납·월북작가의 저작권 소유문제를 교통정리할 계기가 마련됐다.
월북작가 박태원의 대하소설 『갑오농민전댕』출판권을 놓고 남한에 있는 박의 유족과 출판사간에 벌이졌던송사에서 박의 유족이 일단 판정승을 거뒀다.
서울형사지법 김종철판사는 16일 박태원의 차남 재영씨의 승낙없이『갑오농민전쟁』을 출간한 도서출판 공동체 대표 김도연씨에게 저작권법위반죄를 적용, 벌금 3백만원을 선고했다.
박재영씨는 지난해 8월 도서출판 깊은샘과 『갑오…』의 저작권계약을 맺었으나 도서출판 공동체가 이와 상관없이 『갑오…』을 발행하자 지난 2월 공동체 대표를 고소했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공동체가 승복않을 경우 항소·상고등의 법절차를 거쳐야 명확한 판례가 나오겠지만 관계자들은 박의 저작권귀속시비는 일단 가려진 것으로 보고있다.
김종철판사는 『박태원의 호적이 첫부인과 함께 남한에 있으므로 북의 부인은 중혼에 해당, 법적보호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박의 저작권은 남한의 차남이 가진다』고 판결했다.
월북작가의 저작권시비는 이번 박태원의 경우외에 이기영의 소설 『두만강』도 중복출판에 따른 송사에 휘말려 있다.
『두만강』은 도서출판 풀빛이 이의 장손 상렬씨와 지난해 12월 인세계약을 맺고 전집 5권을 펴냈는데 도서출판 사계절이 독자적으로 출판, 이씨가 사계절대표 김영종씨를 저작권침해로 고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사계절 측은 『월북작가나 북한문학의 저작권은 북한의 제도에 따라 확립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더구나 분단상황에 비춰 월북문인의 저작권이 남한유족에게만 있다는 발상은 분단 고착적인 반통일적 관념』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한설야·홍명희등 남한에 유족이 없는 월북작가의 저작권 소유문제도 재판에 걸려있다.
지난 85년 홍명희의 소설『임꺽정』을 출간했다 판금당한 도서출판 사계절은 지난해 8월 문공부를 상대로「임꺽정 출판금지처분 무효확인」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에대해 당국은『사계절이「임꺽정」의 저작권을 갖고있지 않으므로 출판금지조치의 무효를 청구할 자격이 없다』고 심판청구를 기각했다.
이는 『임꺽정』의 저작권이 북에 있을수도, 아니면 저작권 자체가 아예 없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사계절」은 이에따라 『임꺽정』출판금지처분무효 행정소송을 제기, 현재 재판중인데 재판 결과에 따라 남한에 유족이 없는 월북작가 작품의 출판권을 확정시킬 수 있는 첫 사례가 되기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월북작가의 저작권은 남한 유족이 가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허희성저작권 심의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은 『헌법상으로 보면 북한주민도 우리 국민이므로 북한의 저작권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저작권법·민법·상법 등 구체적인 개별법을 적용하자면 북한거주 유족이 남한의 법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길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한국법의 절차를 밟은 남한의 유족이 저작권을 가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원순변호사는『일단은 남한의 유족이 권리를 갖는다 하더라도 남북의 교류나 통일이 현실화할 경우, 북한유족의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지금부터 「남북한 저작권센터」같은 기구를 마련, 남북간의 저작권 귀속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회장 나병식)는 월북작가나 북한원전의 중복 출판에 따른 재판 등 잡음을 막기 위해 「인세공탁금제도」를 마련하는 등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 중이다.
한출협은 북한 작가의 책을 낼 경우 인세에 해당하는 공탁금을 내게해이를 통일시 북한의 저작권자에게 지불한다는 것이다.
통일이 요원한 현실에서 그 실효성은 미지수이지만 월북작가 또는 북한작품의 저작권 시비는 명분과는 별도로 출판사간의 과당 경쟁과 잇속다툼의 측면도 있으므로「공탁금제도」가 자성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게 출판계의 바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