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에 '독서 오아시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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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헌책방' 주인인 장은성씨가 책방을 찾은 어린이들과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성=김성태 프리랜서

28일 오후 충남 홍성군 홍동면 운월리의 '느티나무 헌책방'. 20여 평 규모의 책방에 들어서니 동화책부터 인문교양 서적까지 3000여 권의 책이 책꽂이에 빼곡히 꽂혀 있다. 어른 6~7명이 책을 고르고 있고 10여 명의 어린이는 책방 한가운데 있는 나무 탁자에 둘러앉아 책을 보고 있다.

190여 가구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마을의 한쪽에 자리잡은 이 책방은 생태환경 서적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는 장은성(37)씨와 주민들의 노력으로 6월 초 문을 열었다. 홍성군 서부면 출신인 장씨는 서울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출판사 직원으로 8년간 일하다 2002년 출판사를 설립했다.

2004년 9월께 '출간하는 책의 성격상 생태환경이 잘 보존된 농촌마을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판단, 회사를 고향 근처인 이곳으로 옮겼다. 그는 동갑내기 부인 이미희씨와 외동딸(9)을 서울에 남겨 두고 이 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출판 기획은 이곳에서, 인쇄와 제본 등은 서울에서 처리하고 있다. 이 마을에 온 뒤에도 일본 농민 고다니 주니치의 자전적 에세이 '농부의 길' 등 5권을 출간했다. 출판사 정식 직원은 없고, 필요할 때 임시 직원 2~3명을 고용한다.

장씨는 이곳에 살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농촌 주민이 책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고심 끝에 마을에 조그마한 헌책방이라도 만들기로 하고, 주민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렸다. 장씨는 "돈을 벌기보다는 농촌에 독서문화를 보급해 보자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맞장구를 쳤다. 장씨에게 마을 빈집 한 채를 개조해 책방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했다. 책방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자 책꽂이와 나무탁자 등을 만들어 주고, TV와 피아노도 기증했다. 주민 17명은 아무 조건 없이 책 구입자금으로 170여만원을 모아 장씨에게 건넸다.

장씨는 갖고 있던 헌책 1000여 권과 서울 청계천 등에서 구입한 2000여 권 등을 모아 비치했다. 독서 공간 확보 차원에서 책방 문 밖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에도 나무탁자를 설치했다. 장씨는 틈틈이 서울의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한다.

헌책방은 마을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50~100여 명이 이곳을 찾는다. 어린이 손을 잡고 오는 학부모도 있고, 자동차로 20분 거리인 홍성읍에서도 이곳까지 와 책을 사간다. 단순히 독서를 위해 책방을 찾는 주민도 상당수다. 잘 팔리는 책은 에세이집이나 동화책 등이다. 장씨는 "일주일에 10만원어치 이상(50여 권) 팔려 장사도 제법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헌책방에서 파는 책값은 권당 1000~5000원이다. 5세 된 딸을 데리고 온 배지현(35.여)씨는 "헌책방이지만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 많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책방은 무인 점포로 운영될 때가 많다. 장씨가 출판사 업무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에 2~3일 서울에 가기 때문이다.

장씨는 책방 한쪽에 장부와 돈을 담는 조그만 바구니를 두었다. 책을 사고 싶은 고객은 장부에 구입한 책제목과 구입 날짜 등을 기록한 뒤 바구니에 돈을 두고 가면 된다. 무인 점포지만 지금까지 절도 사건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장씨는 "장서가 1만 권이 될 때까지 수익금은 책을 장만하는 데 재투자하고 이후 수익금은 마을발전기금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홍성=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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