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공산당 "변신"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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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4년프랑스공산당이 사회당과 손을 떼고 사회·공산당연정에서 뛰쳐 나오는가 하면 대부분 서유럽공산당이 각종 선거에서 크게 지는 바람에 서유럽공산주의운동(유러코뮤니즘)이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 이후 살아남을 길을 찾아온 서유럽공산당들이 최근 잇달아 탈이데올로기 정당으로의 체질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서유럽에서 가장 힘있는 공산당인 이탈리아공산당과 가장 힘없는 영국공산당의 옷갈이 작업이다.
먼저 이탈리아공산당의 「아실레·오체토」서기장이 지난5월16일 미국을 방문한 것은 유러코뮤니즘사상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개인자격으로였지만, 그의 미국방문은 이탈리아공산당의 뉴 루크 공산주의를 국제무대에 선보이려는게 목적이었다.
이탈리아공산당은 84년 유럽의회선거때 33%, 하원총선에서 27%의 득표율을 기록, 서유럽공산당가운데 가장 지지기반이 튼튼한 공산당.
모스크바·본·바르셀로나·파리등을 순방했던 「오체토」서기장은 미국방문에 앞서 『이탈리아공산당은 민주주의의 기본틀 안에서 이탈리아를 변혁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있는 좌익정당임을 미국에 알리고 싶다』고 말해 이탈리아공산당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공산주의 정당이기보다 좌익개혁주의 정당임을 강조했었다.
『이탈리아공산당은 계급투쟁정책에 중점을 두지않고 우선적으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에 바탕한 국내 정책개발에 노력하는 정당』이라고 재삼 강조하고있는 「오체토」서기장 자신 철저한 개혁주의자로 1년전 서기장에 선출된 이후 이탈리아공산당이 부르좌에게 더 이상 위협적인 정당이 아님을 알리기위해 각종 야회에 멋진 옷을 입고 나타나 부인과 정답게 입맞추는 모습을 보여주는등 당의 이미지를 바꾸기위해 애써왔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원내총무 「나폴리타노」도 『서유럽공산당이 대표할 수 있는 투쟁적인 노동계급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고 반문하고 『서유럽공산당이 살아남기 위해선 공산주의 용어가 아닌 사회주의용어로 말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같은 이탈리아공산당을 두고 서독사회민주당의 한 간부는 『이탈리아 공산당은 다른 어느 공산당보다도 사회주의정당, 특히 우리당에 가까운 공산당』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사실 이탈리아공산당이 「마르크스」「엥겔스」에 작별을 고한 것은 지난3월18일 로마에서 열린 18차당대회에서였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이때 환경문제·남북문제·여성문제등에 역점을 둔 사회민주주의적 강령을 채택, 부르좌적이며 자유주의적인, 그리고 반전체주의적인 「새로운 공산주의」의 탄생을 알렸었다.
한편 영국공산당은 지난5월23일 「노동계급」「계급전쟁」「대중」등의 종전의 용어들을 「낡은 상표」라고 규정하고 이같은 용어들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 상황의 변화에 대처할 옷갈이를 시작했다.
영국공산당은 노동당내 좌파가 이탈하여 만든 좌익강경파정당으로 이데올로기적 경직성때문에 83년총선에서 0·3%의 지지밖에 못 얻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했으며 1950년이래 의회에 한번도 진출하지 못했으나 노조운동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정당.
「새로운 시대-90년대를 위한 전략」이라는 선언에 관련된 성명에서 영국공산당은 『정치변혁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이라는 용어는 이미 과거의 것』이라고 규정하고 그런 개념들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쓸모없는 정치용어가 계속되는 가운데 「대처」의 보수노선이 부전승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성명은 또 기술을 중시하는 새로운 세대와의 대화에 노력하겠다면서 「계급」이라는 낡은 용어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영국공산당은 지속돼나갈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81년 총선에서 16·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가 86년 9·8%로 급전직하했던 프랑스공산당은 당세하락의 원인이 프랑스사회의 본질적인 변화,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는 사회변화를 적절히 분석하고 이에 대응할 전략마련에 당지도부가 게을리 한데 있다는 당내비판이 있고난뒤 체질개선을 하느라 진통을 겪고있다.
벨기에공산당은 85년선거에서 1·2%의 지지밖에 얻지못해 의회진출을 못하게되자 86년부터 당체질개선에 들어갔으며 「루이·반·게이트」당수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자본의 국제교류에 따른 노동계급의 변화에 적합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당은 소멸하고 말 것』이라고 당간부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정책을 마련토록 계속 당부하고 있고 핀란드 공산당도87년6월 당대회에서 「마르크스」「레닌」 주의의 색채가 크게 줄고 교조적, 이데올로기적, 전통적인 용어들이 사라진 새 강령을 채택했다. 서유럽에서 정치·경제체제가 가장 안정돼있는 서독에서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서독공산당도 늦은대로 체질개선을 시작했다.
유러코뮤니즘이 사양길로 접어들었던 것은 각국 공산당이 각종 선거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던(86년에 서유럽 23개국가 공산당 가운데 키프로스, 핀란드, 프랑스, 그리스,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산마리노,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등 12개국 공산당이 의회에 진출했지만 이탈리아를 빼고는 미미한 정치세력에 그쳤다)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회복지정책·인플레·고용문제등 현실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던 데도 그 원인이 있었던 만큼 서유럽공산당들이 이제 이데올로기의 허물을 벗고 사회변화에 대응해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싶다.
78년 소련에서 추방됐던 유러코뮤니즘 연구가 「알렉산드르·지노비예프」도 『공산주의이념은 더이상 노동계급의 이익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유럽에서의 공산주의 수호자는 이미 노동자가 아니라 지식인과 관료들』이라고 말하고 『서유럽공산당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슬로건을 바꾸지 않는 한 그들의 미래는 없다』고 서유럽공산당 체질개선의 불가피성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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