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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수시 채용, 교육 개혁의 계기로 활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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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팀장

김원배 사회팀장

“투자 대비 수익이 가장 형편없는 것이 사교육이다.”

구직과 이직이 쉬워지지 않으면 경력자 위주 채용 늘 것 #합리적 노동시장이 사교육 열풍 줄이도록 제도 정비해야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2016년 6월에 내놓은 책 『엄마, 주식 사주세요』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는 “과도한 사교육은 노후 빈곤의 큰 이유”라며 “사교육 할 돈으로 주식을 사주라”고 말한다. 주식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는 교육을 해야 하며 사교육은 ‘창의성 없는 월급쟁이’를 만드는 교육이라는 게 존 리의 주장이다. 그의 사교육 비판엔 동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다만 사교육의 투자 대비 수익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일까.

JTBC 드라마 ‘SKY 캐슬’엔 자녀를 서울대 의대에 보내기 위해 수십억원을 주고 ‘코디’를 고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현재 서열화된 대학 체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의대라지만 그 정도 가치가 있을까. 명문대에 간다고 자녀의 미래를 100%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의사는 자격증이 있는 전문직이라 상대적으로 안정된 수입을 올릴 가능성은 크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현재 시스템에선 그런 선택을 하는 학부모는 분명 있을 것이다.

주식 투자에 비유한다면 전체 평균 수익률은 떨어지더라도 ‘대박’이 나는 종목은 존재한다. 내 자식의 미래가 중요한 학부모 입장에선 그런 가능성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경제력 능력이 있는 집이라면 더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도 졸업 때가 되면 취업을 걱정해야 한다. 대학생 자녀를 둔 한 지인은 “입시 때도 힘들었지만 막상 해보니 취업의 어려움이 더 크더라”고 말했다. 대학에 가기 위해 적지 않은 사교육을 시켰는데 취업이라는 더 높은 벽이 있다는 얘기다.

2017년 통계청 조사 결과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18조6223억원이었다. 학령 인구가 줄고 있지만 2016년부터 다시 증가세를 보인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당연히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늘어나는 추세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은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키고 노후 대비를 어렵게 한다. 더구나 이렇게 지출한 사교육비가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투자’로서 기능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거대한 사교육 산업 종사자의 고용을 유지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행 학습과 시험 대비 차원이라면 투자 효과는 크게 줄어든다. 결과론이겠지만 처음부터 사교육비를 쓰지 말고 주식 사주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교육 열풍이 진정되려면 투자 대비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많은 부모가 체감해야 한다. 마침 기업 채용도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정기 공채를 없애고 수시 채용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기업에 필요한 미래 인재를 찾기 위해서다. 10대 그룹 중에선 처음이고 다른 대기업도 이를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세상일엔 양면이 있다. 기업 입장에선 대규모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뽑아 훈련시키는 것보다는 당장 현업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 따라서 수시 채용에선 경력자가 막 대학을 졸업한 사람보다 유리할 것이다. 청년실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해결책은 뭘까. 지금보다는 이직과 구직이 쉬워져야 한다. 흔히 말하는 ‘고용 유연성’ 문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좀 더 많은 사람을 뽑을 수 있다. 그러나 고용의 유연성을 언급하면 ‘쉬운 해고’가 정잼이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보호할 것은 보호하되, 풀어줄 것은 풀어야 한다.

그런 합리적 노동 시장이 형성돼야 대학 교육과 중등 교육도 그것에 맞춰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사교육→좋은 대학→안정된 직장’이라는 연결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의 힘만으론 안 된다. 기업의 수시 채용이 교육 개혁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도 함께 고민하고, 필요한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김원배 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