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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92명을 감독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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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홍준
강홍준 기자 중앙일보 데스크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서울남부지법은 2017년 2월 주가조작 등으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하고 400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했다. 그로부터 1년 4개월 후 나온 대법원 판결도 원심과 같았다. 사회봉사명령이란 법원이 각종 범죄자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때 일정 시간 동안 무보수로 사회에 유익한 근로를 하도록 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왜 400시간일까. 그래서 1심·항소심·상고심 판결문 234쪽을 읽어봤다. 1심 판결문 맨 앞장 주문에 적혀 있는 ‘사회봉사 400시간’ 문구 외엔 특별한 설명을 찾을 수 없었다.

법원은 집행유예 내보내며 사회봉사명령 남발 #보호관찰소는 ‘통솔 범위’ 넘어 엄정 집행 말만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 그런데 뒷수습은 다른 사람이 한다. 법원이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하면 법무부 소속 보호관찰소 공무원은 김씨가 제대로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성범죄자가 전자발찌를 차고 출소하면 거주지 관할 보호관찰소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 사회봉사명령이나 전자발찌부착명령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는 건 시민의 안녕과 직결돼 있다.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것만큼이나 보호관찰은 중요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전국 57개 보호관찰기관의 6급 이하 직원 126명이 담당하는 사회봉사명령 대상자는 1만 1000여 명. 법원의 사회봉사명령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직원 한 명이 92명을 담당하고 있다. 한 사람이 관리 가능한 통솔의 범위(span of control, 8명 이내)를 10배 넘어섰다. 이러다 보니 보호관찰소는 복지관 등을 협력기관으로 지정해 이들의 관리를 위탁한다. 공무원은 이 기관의 사회봉사 담당자에게 전화로 연락해 제대로 근무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대상자들에 대한 관리는 이렇게 민간에 위탁돼 있다. 이들이 모두 사고를 치지 않고, 이행명령을 잘 따른다면 이런 위탁 또는 하청구조가 별문제는 안 될 수 있다. 보호관찰소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정은 그렇지 않다. 한 직원은 “사고 치는 대상자가 내게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보호관찰소는 사회봉사명령 대상자 10명을 한 임대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맡겼다. 환경미화반장은 이들에게 청소를 시킨다. 단지 면적만 4만㎥. 쫓아다니며 일 시키기가 불가능하다. 7층 건물의 한 복지관에 배치된 사회봉사명령자가 없어져 그를 찾느라 3시간이 걸린 적이 있는데 아파트단지의 경우 대상자가 단지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도 알기조차 힘들다. 서울에서 사회봉사명령 대상자가 배치된 아파트는 3곳. 모두 임대아파트다.

사회봉사명령은 법원에 의해 유죄가 인정된 범죄인에 대해 가하는 형벌의 한 유형이다.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하는 자원봉사가 아니다. 그런데 법원은 관리 감독 상황을 따지지 않고 명령을 남발하고 있고, 보호관찰소는 이들 10명 중 8명을 민간 협력기관에 넘긴다. 명령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며, 대상자의 선의에 기댄 방임 상태에 가깝다.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사람을 지켜보는 피해자의 심정은 고역이다. 여기에 시간 때우기 사회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억장은 무너지지 않겠는가. 형의 집행이 이렇게 엄정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말단부터 썩어들어간다.

내년 12월 출소하는 8세 여아 강간 상해범 조두순의 얼굴을 3D 몽타주로 만들어 공개하겠다는 유튜버가 나와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말 ‘조두순 몽타주 제보 받습니다! 그 얼굴 제가 밝히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조씨가 나오더라도 향후 5년간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그의 주거지 등 신상정보가 인터넷에서 공개되지만 얼굴 공개는 불법이다. 시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유튜버가 불법을 저지르겠다는 것이다.

전국 보호관찰소 내 전자감독과 담당 직원 한 명이 맡고 있는 전자발찌 부착자는 평균 18.4명(2017년 기준)이다. 여전히 통솔의 범위를 넘는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유튜버의 시도가 치기 어린 만용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