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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애들은 가라" 얼얼한 성인 애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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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얼얼하다. 이 정도로 시청각적 충격을 준 한국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없었다. '아치와 씨팍'(28일 개봉) 얘기다. 1998년 '진짜 재밌는 걸 만들어 보자'는 작당 끝에 이틀 만에 완성한 시놉시스는 8년만에 결실을 맺었다. "최하 18년의 인생 경험은 있어야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일갈할 만큼 도발적이다. 올해 사십 줄에 들어선 조범진 감독과 그보다 다섯 살 적은 김선구 PD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액션 한번 원 없이 해보고 싶었습니다. 내용 흐름상 못 보여드리고 잘라낸 액션 장면만 15분 정도 되는데…. 그래도 이젠 정말 시원합니다."

조 감독과 김 PD는 이 말로 8년의 세월을 정리했다. 조 감독은 중앙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하다가 '뚝딱뚝딱' 만들어 본 애니메이션 '업 앤 다운 스토리'가 97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에서 덜컥 대상을 차지했다. 그 뒤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아치와 씨팍'작업에 몰두해 왔다. 홍익대 경영학과를 나온 김 PD는 애니메이션 '고인돌''우비소년' 등의 기획PD를 거쳐 조 감독의 J-팀에 합류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달리고 쏘고 때리고 부순다. 관객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 비슷한 속도감을 느낀다. 웬만한 실사 영화가 1500컷 정도인데 이 애니메이션은 2000컷이 훨씬 넘는다. 장면 전환이 그만큼 빠르다는 얘기다. 총격이나 폭발 장면에서는 피도 마구 튄다. "총에 맞으면 피가 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쎄게' 가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가려고 했다. 영화 '진주만'은 허구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리얼하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게 감독의 진지한 설명이다.

8년 된 작품인데도 오래된 느낌이 없다는 말에 조 감독은 "이야기 틀을 잡은 2000년은 세기말이라 오히려 에너지가 많았던 시기였다. 뭔가 다른,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자는 데 의기가 투합했다"고 말했다.

순제작비는 35억원이 들었다. 김 PD는 "자금이 제대로 돌지 못해 어려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03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스타프로젝트 지원금 7억원이 없었더라면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미국 MTV의 경우 5년 전 해외 마켓에 선보였을 때부터 마음에 든다며 지금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메인 스트림은 아니지만 분명 시장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혼자서 레이아웃을 다 그린 초능력을 보여준 김병갑 애니메이션 감독, 3D로 만든 배경을 2D로 만든 주인공과 잘 어울리도록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노가다'를 마다하지 않은 김윤기 미술감독 등 스태프의 노고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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