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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백일장6월] 절제의 '말 부림'에 매혹 … 새벽부터 습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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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못 쓰니까 계속 떨어졌죠.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부끄러워요."

한사코 말을 삼갔지만, 지금껏 시조에 쏟아온 정성을 들으면 갸륵할 정도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한 시간쯤 습작하고 저녁에 두어 시간 다시 습작한다. 어지간한 시조시인의 작품집은 다 사서 읽었다. 특히 유재영.박기섭 등 좋아하는 시인의 작품은 달달 외우고 다닌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시조만 생각한다. 걸어다니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도, 그는 늘 갖고 다니는 수첩을 꺼내든다. 장원 당선작도 이와 같은 부단한 노력에서 얻은 결실이다.

"망초꽃밭에 앉아 꽃을 바라보다 은근히 퍼지는 밤꽃 향을 맡았어요. 한 생이 지나가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바로 수첩을 꺼냈지요."

당선자는 지금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강의한다. 대학 때 전공도 사회복지학이었만, 문학을 향한 열정은 20대부터 계속됐다. 수원에서 열린 백일장 등에 나가 수필과 자유시로 상을 받았고, 인터넷 문학사이트에선 자유시로 등단도 했다.

그러나 마음이 끌린 건 역시 시조였다. 시조 동호인들의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작품들을 보고 시조의 매력에 눈이 떴다. "절제와 함축 속에 풀고 맺는 말 부림"의 재미에 빠져든 것이다. 어렵사리 장원의 영광을 얻게 되어서인지, 당선 소감은 짧고도 소박했다. "노력하는 자에게는 언젠가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믿습니다."

손민호 기자



심사위원 한마디

연시조, 자칫 군더더기 표현으로 함축미 잃어

3장 6구 12마디는 시조 형식의 본령이다. 이 틀을 단수 또는 단시조나 단형시조라고 부른다. 구는 한 의미 묶음이다. 이 묶음이 모여 한 장을 이루고 장끼리 연결되어 하나의 주제를 담게 된다. 창작자는 기본 형식에 대한 다양한 연마를 거쳐야 두 수, 세 수의 연시조 창작이 가능하게 된다.

연시조는 자칫하면 상의 중복을 가져오거나 군더더기 표현으로 함축의 아름다움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초보자는 수련 단계에서 단수에 상을 압축하여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단수를 능하게 쓰지 못하면 연시조 창작도 어렵다. 본령에 충실하지 않고서 형식의 변용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달 장원의 영예는 송유나의 '밤꽃 향, 여물 때까지'에게 주어졌다. 꽃이 만개한 밤나무 옆을 지나가다가 느낀 정감을 독특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흠 잡을 데 없는 구성이다. 이미지를 적재적소에 골고루 배치하여 세 수 한 편이 완결의 미학에 근접해 있다. '갈래길 들어설 때는 하얀 외침 가득해', '지난 해 아물지 못한 틈새자국 쓰려 와', '가끔씩 퉁명스럽게 툭, 내뱉는 저 말투'와 같은 살아있는 표현들을 특히 높이 사고 싶다. 모두 종장들이다. 즉 종장에서 의미를 심화시키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차상 연선옥의 '강'은 새로운 소재는 아니나, 대상을 시종 진지하게 탐색하는 힘이 돋보인다. 좀더 신선한 발상에 힘썼으면 한다. 차하 양윤애의 '초록별 이야기'는 계절 감각을 살려 삶의 현장을 진솔하게 노래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겉으로 보이는 사물이나 정경을 묘사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정신세계나 내면을 깊이 있게 탐색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참고로 계절에 맞는 시조 한 편을 소개한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눈여겨보기 바란다.

'쩡 터질 듯 팽창한/대낮 고비의 정적//읽던 책을 덮고/무거운 눈을 드니//석류꽃 뚝 떨어지며/어데선가 낮닭소리'- 이호우, '오(午)'

응모자들은 시조 고유의 율격, 즉 기본 형식에 대해 숙지할 필요가 있다. 이 지면은 창작 시조를 응모 받아 우수작들을 선보이는 자리이므로 형식을 모르거나, 제대로 지키지 않은 작품들은 심사에서 논외로 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이한성.이정환>



응모안내=매달 20일쯤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매달 말 발표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해마다 매월 말 장원과 차상.차하에 뽑힌 분들을 대상으로 12월 연말장원을 가립니다. 연말장원은 중앙 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등단자격 부여)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매월 장원.차상.차하 당선자들에겐 각각 10만.7만.5만원의 원고료와 함께 '중앙 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을 보내드립니다.▶보내실 곳=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 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우:100-759), 전화번호를 꼭 적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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