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실명제, 검은 돈 투명해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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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성예금증서(CD) 실명제 도입이 서울 명동 사채시장을 위축시키는 등 금융 거래 관행에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무기명이 최대 장점이던 CD 거래가 실명 등록을 통해 이뤄지면서 그동안 어느정도 자금세탁의 여지가 있었던 사채시장의 역할이 한층 쪼그라들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금출처를 조금씩 세탁했던 기업이나 개인 등 거액예금자들의 자산 운용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거액의 재산을 모은 초부유층들을 중심으로 무기명 CD 발행이 불가능해지는 등 그동안의 금융거래 관행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어떻게 바뀌나=오는 7월부터 금융회사를 시작으로 9월 개인까지 등록발행제가 도입되면 CD를 거래할 때마다 새로운 소유자는 증권예탁원에 실명을 신고해야 한다. 돈에 꼬리표가 붙어다니게 되는 것이다. 실명을 전산등록하게 됨에 따라 실물 증서도 발행되지 않는다.

이처럼 실물 증서를 발행하지 않는 것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타났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다. 지난해 시중은행에서는 CD 발행 직원들이 고객이 맡긴 실물 CD를 빼돌려 현금화한뒤 해외로 도주하는 등 CD 실물 발행으로 금융사고가 잇따랐다.

CD는 지금도 처음 발행할 때는 실명으로 발행된다. 하지만 소유권을 넘길 때는 실명 확인이 필요없다. 신한은행 개인고객지원부 이완두 차장은 "하지만 앞으론 최초 발행 이후 소유자가 바뀔 때마다 증권예탁원에 실명을 등록하게 된다"며 "돈의 흐름이 투명해진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당분간 증서 발행을 그대로 허용하되 궁극적으론 증서 발행을 금지하고 모두 예탁원에 거래자를 등록시킬 방침이다. 증권예탁원 등록을 위해 권종도 표준화시켜 현재 500만원선인 최저액면은 1000만원으로 높아지고 한도는 10억원 짜리로 낮춰 권종은 3개로 제한된다.

◇위축되는 사채시장=어차피 CD는 기간이 단기여서 채권처럼 명동에서 거래되는 양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4년 4월 국민주택채권이 실물 발행에서 등록 발행으로 바뀐뒤 확 위축된 명동 채권매입상들의 걱정이 크다. 명동 사채시장 관계자는 "2년전 국민주택채권의 실물이 없어지고 채권이 전자 발행되면서 예전에 20 ̄30%씩 할인해 먹고 살았던 채권 유통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했는데 CD마저 실물이 사라지면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털어놨다. 한 사채시장 관계자는 "CD는 기간이 단기여서 할인받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나마 그것마저 없어지면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이미 CD가 처음 개발된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개인들의 CD 매입이 흔하지 않다. 개인들의 자금 수신상품으로서의 성격보다는 금융회사간 자금조절 수단이나 기업의 단기자금 운용수단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거래단위가 100만달러 이상 거액이며 이는 개인들의 활용을 더욱 저조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에서는 CD를 양도할 때는 반드시 발행 금융회사에 통보해 실명 확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자금 거래 더욱 투명화=기업과 정치권의 자금세탁, 개인의 증여 등 불투명한 자금거래는 한층 불가능하게 됐다.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 이후에도 CD는 지하자금을 양성화하는 차원에서 도입된 측면도 있는 만큼 그대로 무기명 거래가 허용돼 검은돈 세탁에 활용됐다. 이에 따라 외국과 달리 국내에선 기업과 부유층 개인들이 CD를 애용하면서 최근엔 기업과 개인이 전체 CD의 절반 가량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는 2000만원 이상 현금 거래 때 고객의 신상을 모두 신고하게 한 고객알기제도가 도입되고 CD 실명제까지 도입되면서 자금세탁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하나은행 조성욱 골드클럽센터장은 "이미 대부분의 부유층 고객은 특판예금을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검은돈 운용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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