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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 수준과 천안문 학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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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경 계엄군에 의한 시위군중 대학살 만행은 중국 인민은 물론 전 세계를 충격과 분노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 인민들은 각지에서 정권타도 운동을 벌이고 있고 군의 일부도 이에 가담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 국가들은 모두 중국 계엄군의 야만적 행위에 항의하고 여러 가지 형태의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번 북경의 대학살은 등소평·이붕·양상곤 등의 강경파가 당 총서기인 조자양 등의 온건파를 제거하고 일으킨 만행이라고 한다. 등·이·양과 조는 모두 등이 실권을 장악한 78년이래 실용주의 노선으로 중국 근대화를 추구하는데 협조해온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개혁의 범위와 속도, 정치적 개혁의 필요성, 그리고 대외 문호개방의 범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야만적" 비난 쏟아져>
조를 비롯한 온건파들은 중국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시장의 역할을 보다 확대하고, 경제개혁의 성공을 위해 정치적 개혁을 단행하고, 보다 많은 국가들에 문호개방을 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조는 1987년 10월에 개최된 중국 공산당 제13차 당대회에서 당과 정부의 기능을 분리하고, 당의 하급기관에 권한을 이양하고, 정부기관을 개혁하고, 인사제도를 쇄신하고, 협의와 대화체계를 수립하고, 의회와 선거의 역할을 제고시키고, 법체계를 정비할 것을 주장했다.
이외에도 그는 사회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은 공통된 이해관계를 한편으로 가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고 상이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사실상 사회주의 사회의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발언으로 레닌이즘에는 배치되는 사고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등소평은 조의 이와 같은 개혁노선을 당시 지지했다고 한다.
현재 강경파로 알려지고 있는 이와 양 등이 이와 같은 개혁노선에 전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개혁을 지지하면서도 그것이 사회주의·인민민주독재·공산당의 영도·마르크시즘-레닌이즘·모사상의 네 가지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중하게 추구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강경파들은 개혁이 중국사회를 「부르좌 자유주의」에 물들게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反부르좌 자유화」 운동을 전개해왔다. 그들은 87년 1월 학생들의 시위에 온건했다는 이유로 당총서기 호요방을 실각시킬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을 당내에 가지고 있었다.

<개혁속도·방식에 이견>
등의 실용주의적 개혁노선이 지난 10여 년 간 중국경제에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79년이래 중국 농촌이 채택한 포산도호제는 개인가족이나 가족들의 그룹이 집단농장으로부터 빌린 농토에 농사를 지어 일정량의 농산물은 그 농장에 계약된 가격으로 팔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자유로 처분할 수 있는 제도로 이 제도는 농촌의 농산물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키고 농가수입도 급격하게 증대시켰다.
이와 같은 시장지향의 개혁은 1984년 말부터는 도시 산업부문에서도 채택되어 약간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외 문호개방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1978년부터 1987년 간에 총1만건 3백억 달러에 이르는 합작 계약이 이루어져 그중 90억 달러가 실제로 투자되었고 같은 기간에 공산품의 총 수출액은 1천4백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제개혁은 소련이나 동유럽 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인플레, 빈부간의 소득격차, 정부와 당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유발시키거나 심화시켰다. 이것이 중국인민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폭력으로 위기 대처>
그 중에서도 적은 봉급 외에는 별다른 수입이 없는 교원들이나 지식인들의 불만은 그 어느 계층보다 높고 학생들의 시위는 중국 인민, 특히 지식인들의 이와 같은 불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재 소련과 동유럽제국은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민주화 노선과 폴란드의 복수정당 인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회적 자유화로부터 오는 위기를 정치개혁으로 대처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강경파들은 이와 같은 정치개혁의 노선을 택하기보다는 경제개혁으로부터 오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불만과 위기를 폭력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소련·동구와 중국과의 이 같은 차이는 바로 다름 아닌 정치적 발전수준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소련이나 동유럽제국은 당내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전통을 이제 어느 정도 쌓았고 소외 반공산당 세력도 공산당 독점의 제도권 정치에 편입시키는 정치적 아량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아직도 이러한 전통이나 아량을 보이지 않고 상호간 적나라한 권력투쟁에 몰두해 있다.
이번 군중들에 대한 무차별 사격도 중국 지도부 내부의 이와 같은 정치적 특성으로 인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대륙에 중화인민 공화국을 수립한 이래 그 지도층 내부의 분열과 대립은 문화대혁명기에 뚜렷하게 나타난 바와 같이 중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중국 사태는 반드시 다른 나라의 일만 같지는 않다.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유혈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과거에 가졌던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 전 6·29선언으로 우리가 이와 같은 위기를 간신히 넘긴 것은 잘 알고 있다. 여야당의 지도자들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위기가 다시는 도래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를 당부하고 싶다.

<서울대 교수·정치학> 이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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